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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3 16:52
[토론연재4]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글쓴이 : 최고관리자
 

[토론연재4]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편집국

 

 

[재미동포중남부지역연합회 회원들의 모임에서 자유토론이 있었다. 토론은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생각하는 내용이었다. 이 모임에는 회원을 비롯해 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이 참석하였다. 토론에서 논의된 것을 간추려 소개한다. 회원의 질문에 김현환 소장이 대답한 것을 편의상 질문과 대답으로 표기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질문: 사람들에게 무슨 무슨 사상을 설명하거나 더 나아가 전파한다는 전제보다는  도대체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 본성을 제대로 드러낸 사상이라면 이름이 뭐라든 그 보편성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봅니다.

 

대답: <인간의 본성>이라,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고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만들고 <혼>을 불어 넣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을 <정신적인 존재>로 본 것이지요. 하나님의 혼을 지닌,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가 인간이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뭐가 빠졌을까요?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맑스는 세계의 근원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초자연적  존재인 하나님>이라는 <관념> 혹 <의식>이 아니라 <물질>이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세계의 모든 것은 물질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유물론자들은 보았어요. 인간도 물질 발전의 최고 산물이고 오랜 자연진화의 소산이 인간이라고 이들은 보았지요. 인간도 <자연적 속성>, 즉 생물유기체로서의 속성인 <생물학적 속성>을 지니고 있어요. 생물학적 속성이란 육체적 존재를 유지하려는 본능적 속성이지요. 물질대사, 자극에 대한 반응, 종의 번식, 등이 그것이지요. 그런데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생리적 요구>가 아니라 <사회적 요구>라는 점입니다. 동물이 자연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연적 존재이듯이 인간은 자연뿐 아니라 사회와도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적 존재>이지요. 그러니까 인간은 <자연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적 속성>과 함께 <사회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세계에서 유일한 <사회적 존재>인 까닭에 인간의 본성을 <자연적 속성>에서 보다 <사회적 속성>에서 찾아야 합니다. 자연주의적 인간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은 <생물학적 본능>, <동물적인 욕구>라고 했지요. 포이엘 바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사회적 관계로 보지 않고 남녀 간의 사랑, 성적 사랑과 같은 생물학적 관계로 보았어요. 그는 인간을 생물학적 관계로 결합된 자연적 존재, 생물학적 개체로 보았지요. 헤겔은 인간은 <세계정신>, <절대이념>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며 인간의 본질은 <사유>, 즉 <생각>이라고 했고요. 그러니까 이러한 <관념론적 인간의 본질>에 대한 생각보다 <생물학적 인간론>이 < 유물론적인 시각>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진일보한 것이기는 하지요. 이처럼 종래의 철학에서는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논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본 맑스주의에  와서 비로소 <사회적 관계 속>에서 논의 되기 시작했어요. 맑스는 [신성가족]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지요.

 

 "만약 인간이 나면서 사회적이라면 그는 그의 참다운 본성을 <사회 속>에서 비로소 발전시키며 인간은 그 본성의 힘이 개인의 힘에서가 아니라 <사회의 힘>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을 <사회관계>에서 찾으려 했다는 말이지요. 맑스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은 <노동>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지요. 노동은 사회의 산물이지요. 노동과 언어는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특성이지 동물의 특성은 아니지요. 그러나 그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인간의 목적은 수단에 앞서 존재하는 근원적인 것이기에 인간의 본성도 수단에 앞서 목적에서 찾아야지요. 노동과 언어는 인간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지요.

 

그러면 과연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일까요? 주체사상에 이르러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답이 주어지게 되었어요. 주체사상은 인간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3대 본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주성>이란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을 말합니다. 인간은 자주성이라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온갖 구속과 예속을 반대하며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주적인 존재>로 됩니다. 인간에게 고유한 활동인 노동활동이나 사회변혁운동은  <본능적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주적 요구>에 의해서 추동되는 운동이며 객관세계에 순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개조하고 지배하기 위해서 벌여나가는 운동이며 자신의 힘으로 자연과 사회를 개조변혁하며 자기에게 복종시켜 나가는 활동이지요. 이처럼 인간의 모든 활동의 근본 원천, 동인, 활동의 결과가 <자주성>이라는 본성에 의해 규제되니까 자주성이 사회적 인간의 본성으로 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창조성>은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지요. 이 창조성이라는 본성 때문에 인간은 외부 세계에 맹목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자연과 사회를 자주적인 요구와 지향에 맞게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해 나가는 창조적 존재로 되는 것이지요. 인간의 노동은 목적의식적으로 자연을 개조하고 새로운 물질문화적 부를 창조하는 활동이며 사회변혁운동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낡은 사회관계>를 <새로운 사회관계>로 교체하는 창조활동이지요.

 

세째로, <의식성>이란 본성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입니다. 의식성으로 하여 인간은 세계와 그 운동발전의 법칙을 파악하고 자연과 사회를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의식적 존재>로 되지요. 인간의 큰 두 가지 활동은 인식활동과 실천활동인데 이 두가지 활동을 규제(control)하는 것이 바로 의식성이지요. 이 의식은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 유기체 중에서 가장 발달된 인간 <뇌수의 고급한 기능>입니다. 뇌수는 사람의 육체적 기관들의 활동을 조절통제할 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활동도 규제합니다.

 

의식은 사물의 본질과 운동법칙을 반영한 의식형태인 <지식>과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인 <사상>으로 구별된다는 것을 이미 많은 글을 통해서 제가 여러번 밝혔지요.

 

이처럼 인간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세계에서 특수한 지위(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특수한 역할(결정적 역할)을 하는 특수한 존재(만물의 영장)로 될 수 있었지요. 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저의 다른 글들을 참조하면 좋겠네요.

 

질문: 이렇게 질문드려 볼까요? '운명의 주인과 결정력이 사람 자신에게 있다'는 관점은 애시당초 기독교의 인간관과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것 아닌가? 가난하고 병들고 억압받는 자들 편에 섰던 예수도 운명을 판갈이 할 순간에는 인간관에 막혀 등을 돌리지 않았을까? 라는 반문을 드립니다.

 

대답: 그렇지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주인의 지위)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결정적 역할)는 <사람중심의 사상>인 주체사상과 하나님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창조하고 인간의 운명도 결정한다는 <신중심>인 기독교의 사상과는 서로 대립되지요. 더욱이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인간은 <정신적 존재>가 아니라 <물질적 존재>입니다. 예수가 결정적인 순간에 등을 돌린 것은 <인간관>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정치적인 압박(로마와 헤롯당)과 종교적인 압박(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가야바를 우두머리로 하는 종교지도자들) 때문에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예수의 운동은 혁명적 운동도 아니요 더구나 무력에 의한 혁명운동은 아니었지요. 그러나 최소한도 안식일 법을 어겨가면서도 병자들을 고친 인간중심의 사상을 가진 분이었고 안식일(종교, 사상, 이념)이 인간을 위하여 복부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진 휴머니스트였다고 봅니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계속 늘어나자 두려움을 느낀 로마와 헤롯당(지금의 이남 정권같은 괴뢰정권)과 종교집단이 야합하여 예수를 처참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였다고 봅니다.

 

위에서 논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생물학적으로 유전되는 <생물학적인 속성>이 아니라,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관계를 맺으며 형성되는 <사회적 속성>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도 유전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1새대의 혁명가 자녀들은 유전적으로 자동적으로 혁명가가 될 터인데요.

 

그래서 자본주의의 <정글 논리>대로 인간을 동물처럼 풀어놓고 알아서 먹고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사실상, <사회혁명>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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