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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07 12:06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토론(사회역사의 객관적 법칙에 관하여)
 글쓴이 : 최고관리자
 

[토론연재25]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토론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원들의 모임에서 자유토론이 있었다. 토론은 지금까지 토론한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이제 <사회>와 <역사>에 대한 주체사상의 이해, 즉 <주체사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사외역사의 객관적 법칙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이 모임에는 회원을 비롯해 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이 참석하였다. 토론에서 논의된 것을 간추려 소개한다. 회원의 질문에 김현환 소장이 대답한 것을 편의상 질문과 대답으로 표기한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토론(사회역사의 객관적 법칙에 관하여)

 

 

질문: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주체사관이 <주체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역사 운동>을 내세우고 있는데 거기에는 <객관적 법칙>이 없으므로 <객관성>과 <합법칙성>이라는 범주가 탈락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사관이 <주체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역사 운동을 강조하고, <주체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역사 운동의 법칙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데 거기에는 <객관적 법칙>이 없다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체사관은 단지 사회역사 과정을 <주관주의화> 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사회역사 분석과 인식에서 <객관성>과 <합법칙성>이라는 방법론적 범주를 버리는 것이라고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자세히 해명해주시지요.

 

 

대답: 그러한 잘못된 주장은 <역사법칙>, <사회발전 법칙>에 대한 일면적이고 피상적인 인식과 관련되어 있고, 또한 주체사관에서 내세우고 있는 <주체의 운동법칙>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한 것과 관련되어 있지요. 물론 일반적으로 법칙의 중요한 징표는 <객관성>이지요. <객관성>, <일반성>, <반복성>, <필연성>은 모든 법칙의 중요한 징표들이지요.

 

 

바로 앞의 토론에서 지적한 <3대 개조>인 <자연개조>, <사회개조>, <인간개조>의 합법칙성은 인간활동이 세 영역의 상호관계 사이에 작용하는 합법칙성이지요. 즉 자연개조 활동, 사회개조 활동, 인간개조 활동 사이에 작용하는 합법칙성입니다. 이것은 물론 <객관적 법칙>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에서는, 특히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온 사회가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되고, 또 착취사회에서도 <주체인 민중>은 착취계급과는 대립하고 있지만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정치적 생명체>는 자기의 생명 자체의 요구로부터 자연의 주인, 사회의 주인,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되려고 하는 요구를 <객관적으로> 내세우게 되지요. 이러한 <자주적 요구>는 가장 발전된 물질적 생명체인 <사회정치적 생명체>가 필연적으로 내세우는 <객관적 요구>입니다. 이러한 <자주적 요구>에 의해서 <3대 개조 운동>이 일어납니다.

 

 

또한, 이러한 <자주적 요구>를 실현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인 <집단>이 해당한 역사적 시기에 어떠한 생활력, 즉 물질적 생활력과 정신적 생활력을 포함한 어떠한 <사회적 생활력>을 가지는가 하는 것은 <개인들의 의사>에 의존하지 않는 <객관적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가장 발전된 물질적 생명체로서의 <사회정치적 생명체>가 내세우는 <자주적 요구>에 의해서 인간활동의 방향이 주어지고,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창조적 생활력>에 의해서 인간활동이 추동되기 때문에 사회적 운동이 그 어떤 <자의적인>, <주관주의적인> 것으로 될 수 없지요. 그것은 엄연한 <객관적 법칙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체사관이 내세우는 <주체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적 운동에는 <객관적 법칙>이 없고, 또 거기에는 <객관성>과 <합법칙성>이라는 방법론적 범주가 탈락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람의 활동을 보면, 사람은 자기의 <창조적 능력>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만 <자주적 요구>를 실현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창조적 능력>에 상응하게 <자주적 요구>를 내세우고 그것을 자신의 <창조적 능력>으로 실현해 나가지요. 결국, 인간의 <자주적 요구>에 의해서 <인간활동의 방향>이 규정되고, 인간의 <창조적 능력의 수준>에 의해서 <자주적 요구의 실현 정도>가 규정되어 나가는 것이 인간활동의 중요한 법칙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인간의 활동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려면 인간의 <자주적 요구>, <자주적 사상의식>이 높아져야 하며,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이 높아져야 합니다. <자주적 요구>, <창조적 능력>, <인간활동 자체>, 이 삼자 사이에 작용하는 합법칙성은 중요한 <객관적 법칙성>입니다. 인간이란 무엇보다도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제기되는 <자주적 요구>, <창조적 능력>은 역시 생명체의 <필연적 요구>로서 <객관적으로> 제기되는 것이고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 일정한 수준의 생활력이 있게 되지요. 여기에 그 어떤 <주관주의적인>, <자의적인> 것이 있을 수 없지요. 따라서 <물질적 존재>인 주체인 인간을 곧 <의식>이라고 보거나, <주관>이라고 보거나, 또 <의식의 대변자>로만 보면서 인간활동 자체에나, 인간과 객관세계 사이에는 그 어떤 <객관적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법칙성에 대한 피상적이고 일면적인 이해로 됩니다.

 

 

사실상 오랫동안 사람은 곧 <주관>으로, <의식의 대변자>로만 파악되어 왔기 때문에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의 활동 자체에는 <객관적 법칙>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요. 그리하여 사람은 단지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에 작용하는 <객관적 법칙>을 자기 활동을 통해서 실현할 뿐이라는 이해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유물사관>도 본질상 이러한 이해에 머물러 있었지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객관적인 사회발전 법칙>의 요구가 사람들의 활동을 통해서 실현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은 자기활동을 통해서 자기의 의식 밖에 있는 <객관적 법칙>을 실현하는 존재, 그러한 법칙의 요구를 관철하는 존재로만 문제를 세웠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여기에 머무르고 그 이상 전진하지 못했지요.

 

 

그러니까 사회발전 법칙의 작용과정에 <의식의 요소>가 개입된다는 사실을 인정한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이 법칙은 의식 밖에 그와 독립해 있는, 즉 인간 밖에 그와는 독립해 있는 <객관적 법칙>의 요구를 관철하며, 법칙의 요구를 실현하는 존재로만 인간을 보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인간>이 객관적인 <사회법칙>의 주인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법칙>이 <인간>의 주인으로 되어버립니다. 법칙의 <객관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인간>은 단순히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에 작용하는 <객관적 법칙>의 <요구>를 실현하는 존재로만 일면적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객관적 법칙>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법칙>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지난 시기 주로 인간 밖에 있는 객관적 요소들 사이의 관계, 즉 그들 사이의 일반적이고,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관계들만을 주로 <역사발전 법칙>으로 이해하였지요. 그러다 보니 인간 자체는 법칙을 이루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왔지요. 더 나아가서 인간의 <의식>, <관념적 요소>는 법칙의 어떤 요소로도 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편향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역사발전 법칙>을 좀 더 전면적으로 고찰하기 위해서는 인간 밖에 있는 물질적 요소들 사이의 법칙, 인간과 객관적인 물질적 요소들 사이의 법칙, 인간의 관념적 요소와 객관적인 물질적 요소 사이의 법칙, 그리고 인간의 관념적 요소들 사이의 법칙, 등 다양한 법칙의 형태들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 요소가 물질적인 것이든, 관념적인 것이든, 그리고 그 요소가 인간이든, 객관 세계든, 거기에 작용하는 관계가 <객관적>이고, <필연적>이고, <본질적>이고, <반복적>일 때는 그것들이 다 법칙으로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과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과의 상호 관계에 작용하는 법칙은 역사발전 법칙으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지요.

 

 

역사발전 법칙을 논할 때, <주체사관>의 기본법칙은 <사회의 주인>이며 <역사의 주체>인 <사람>의 <자주성>과 <창조성>이 발전하는 데 맞게 <사회적 재부>가 창조되고 <사회적 관계>가 개선되어 나간다는 법칙입니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는 구성요소들 가운데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발전하는 데 맞게, 즉 사람의 <본질적 속성>인 <자주성과 창조성의 발전수준>에 맞게 사회적 재부가 창조되고 사회관계가 개선되어 나가는 것이 법칙입니다. 사실상 <사회적 재부> 자체가 자주성과 창조성이 객관화된 것, 즉 인간의 창조물입니다. <사회적 관계>도 역시 인간의 <창조물>이고 인간에 의해서 개변되지요. 그러니까 창조자인 <인간>의 <발전수준>에 맞게 사회생활의 <객관적 조건>을 이루는 <사회적 재부>와 <사회적 관계>가 개선되어 나갑니다. 이것은 <인간>을 한편으로 하고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양자사이의 객관적이고, 필연적이고, 일반적이고, 반복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역사발전 법칙입니다. 따라서 <주체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적 운동법칙>, 즉 주체인 인간이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 즉 사회적 재부와 사회관계를 개조하고 개선해 나가는 법칙은 <객관적 법칙>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이며, 심지어 그것은 법칙이 될 수 없다는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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