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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26 21:53
사회정의를 부르짖은 예언자 아모스
 글쓴이 : 최고관리자
 

사회정의를  부르짖은 예언자 아모스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역사적 배경

 

이스라엘의 옴리 왕국 2대 왕 아합(B.C. 869~850)이 시리아와의 전쟁 중에 <라못길리앗>에서 전사하자 그의 아들 <아지야>가 왕이 되어 2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죽자 아합의 아들 여호람(849~842)이 왕위에 올랐다. B.C.842년 군 장성 예후(Jehu, 842~815)는 엘리아와 엘리사가 이끄는 야웨신앙자들의 후원을 받아 여호람, 이세벨, 그리고 아합의 후손들을 모두 살해하고, 또 바알 신봉자들을 바알신전에 모이게 하여 모조리 살해함으로써 <바알숭배>를 뿌리 뽑아 혁명에 성공했다고 열왕기를 쓴 신명기작가(D작가)는 기록하고 있다(열왕기하 10:18~28). 예후는 가나안의 농경생활에 안주하여 야웨신앙을 버리고 안보의 신 바알을 예배하는 자들을 반대하고 광야에서 형성죈 <모세전통>에 열렬하게 헌신하고 있던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Jehonadab)을 등정시켜 엘리아와 엘리사가 시도했던 <야웨신앙>의 재건을 도모했다(열왕기하 10:15~17).

 

그후 예후 왕국은 시리아의 공격을 받아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일어난 거대한 아시리아(Assyria) 제국과 현명한 외교관계를 맺음으로서 시리아를 몰아낼 수 있었다. 예후 왕조 3대 왕 여호아스(B.C.801~786) 때에는 남조 왕국 유다를 굴복시켜 주종관계의 외교를 맺을 정도로 강력한 왕국을 이루었으며, 예후 왕국 4대 왕 여로보암 2세(B.C. 786~746) 때에 이르러 북조 이스라엘은 41년간 영토를 확장하고 부강한 나라를 이루어 태평성대를 이루게 되었다. 열왕기하서를 쓴 신명기 역사가는 단지 짧게 여로보암 2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고고학자들이 지적하는 바로는 이 당시 경제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누렸으며 정치적으로 안정을 이루며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성에서의 왕족과 귀족들의 부귀영화는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반면 일반 백성들은 심한 세금부담과 강제노동으로 고생을 겪고 지냈으며 빈부의 격차는 극도에 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태평생활을 누리며 평화를 만끽하던 시대에 불쑥 나타나서 이스라엘인들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평화는 거짓 평화이며 국제정세 속에서 이스라엘이 처한 지정학적인 위치를 망각하고 술타령이나 일삼고 베델과 단(Dan)에 모신 <금송아지들>이나 믿으며 단지 군사력에만 의존하여 백성들의 강제노동으로부터 해방하려는 아우성을 망각하고 귀족층과 왕족층의 안보만 위하는 <물질신 금송아지>를 섬기는 이스라엘은 곧 망하리라는 저주를 퍼부은 선지자가 있었으니, 하나는 남쪽 유다출신으로 북쪽 이스라엘에서 예언한 아모스(Amos)와 북쪽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본토민에게 호소한 호세아(Hosea) 두 선지자였다. 여기서는 먼저 아모스 선지자만 소개하고 다음 장에서 호세아 선지자를 소개하겠다.

 

 

아모스의 예언

 

 

아모스는 남쪽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수 마일 떨어진 조그마한 마을 드고아에서 양을 치던 목자 출신으로(아모스 7:14~15) 야웨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여로보암 2세 때 누리던 태평성대에 <가혹한 말>을 전파하라는 어려운 소명을 받았다. 아모스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그 이웃 나라들이 군사적인 힘과 경제력만 믿고 귀족들은 일반백성들에게 심각한 불의를 자행하며, 착취와 억압을 일삼고 가증스러운 비도덕적 행위를 일삼고 있었으며, 종교인들은 단지 얄팍한 <경전주의>에 빠져 개인적 안보에만 집중하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아모스가 활동한 연대는 여로보암 2세가 사망하기(B.C.746) 몇 년 전인 760~750년 사이로 알려져 있다.

 

아모스 선지자의 타협을 불허하는 <역사의 신, 야웨>의 강력한 말씀의 선포는 그 당시 북이스라엘의 <궁실예언자들>과 심한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아모스서 7:10~17에 잘 묘사된 바와 같이 북이스라엘 궁실 지성소인 베델의 대제사장 아마지야(Amaziah)와 아모스와의 개인적 충돌은 히브리 예언사상 잊을 수 없는 극적인 장면 중의 하나였다. 평범한 목자이며 농사꾼인 아모스와 직업 사제인 아마지야와의 극적인 상봉에서 아모스의 배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여로보암 2세의 녹을 받으며 왕의 비위나 맞추어주던 아마지야는 아모스도 그의 종교적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직업 선지자로 간주하고 아모스가 베델을 떠나 그의 고향 유다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예언자 역할을 하며 밥을 벌어먹기>를 바랐다(아모스7:12). 아마지야는 계속해서 아모스를 책망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다시는 하나님을 팔아 베델에서 입을 열지 말아라.

여기는 왕의 성소요 왕실 성전이다”(아모스 7:13).

 

아모스는 왕의 권세로 지위가 당당한 아마지야에게 서슴없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본시 예언자가 아니다.

예언자의 무리에 어울린 적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목자요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농부다.

나는 양 떼를 몰고 다니다가 야웨께 잡힌 사람이다.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 가서 말을 전하라고 하시는 야웨의 분부를 받고 왔을 뿐이다. 그러니 너는 이제 야웨의 말씀을 들어라.” 아모스 7:14~16).

 

위의 아모스 답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단지 평범한 <야웨신앙>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국제정세 속에서 이스라엘이 당할 미래의 운명을 읽고 <역사의 미는 힘>에 끌려 고향을 떠나 북쪽 이스라엘에 가서 예언한 사람이었다. 아마지야에게 쫓겨난 아모스는 베델의 왕의 성소를 떠나 아마도 남쪽 유다로 다시 돌아가 그곳에서 그가 공중 앞에서 선포한 예언을 기록해 놓았던 것 같다. 그보다  앞선 예언자들인 미가야, 엘리아, 그리고 엘리사 등의 예언은 구두로 전달되어 내려왔지만 아모스 선지자는 문자로 예언을 기록한 최초의 작가였다.

 

 

아모스 예언의 핵심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백성을 깨우치려고 시도할 때 항상 촉구한 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핵심적인 사건인 <이집트의 종살이로부터 탈출한 출애굽>을 기억하자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을 통하여 잡다한 군중들이 <하나의 민족>을 이루는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모스 예언의 요점도 바로 이 <민족해방의 사건>, 즉 <엑소도스>를 기억하도록 백성들을 깨우치는 일이었다(아모스 3:1~8).

 

모세 전통에 의하면 <언약의 법(Covenant Law)> 그 자체가 이스라엘의 미래를 무조건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야웨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역사의 신 야웨의 말씀을 듣고 언약을 지킬 때만이 세계사의 주인 역할을 하는 역사적 민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19:5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제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준 계약을 지킨다면, 너희야말로 뭇 민족 가운데서 내 것이 되리라.”

 

아모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비꼬며 예언하였다.

 

“’하나님이 설마(택함을 받은)우리에게 재앙을 내리시겠느냐? 이미 구원을 누리고 있는 우리를 고생시키지 않는다’고 하면서 못할 짓만 하는데도 내 백성이라 하여 칼에 맞아 죽지 않게 하겠느냐?” (9:10)

 

아모스는 사회정치적인 악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성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그 안에 억울한 일들뿐,

온통 뒤죽박죽이로구나.

바른 일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궁궐에는 권력으로 등쳐먹는 자들뿐이구나.” (아모스 3:9~11)

 

이들 백성을 등쳐먹는 왕족과 귀족들은,

 

“멋진 침대, 화려한 잠자리에서 뒹굴고 있고”(3:12)

상아 침상에서 뒹굴고 보료 위에서 기지개를 켜며,

양 떼 가운데서 양새끼를 골라 잡아먹고

외양간에서 송아지를 잡아먹는 것들….

거문고를 뜯으며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것들,

몸에는 값비싼 향유를 바르고 술은 대접으로 퍼마시며

백성이 망하는 것쯤 아랑곳도 하지 않는 것들(6:4).

남편을 졸라 술을 가져다 퍼마시며

힘없고 가난한 자를 짓밟는 귀족 부인들.”

 

이들 왕족과 귀족들은,

 

“되는 작게, 추는 크게 만들고 가짜 저울로 속이며

등겨까지 팔아먹는도다.

힘없는 자 빚돈에 종으로 삼고

신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자를 종으로 부려먹는구나.” (8:4~6)

 

이들 지배층은,

 

“힘없는 자의 머리를 땅에 짓이기고

가뜩이나 기를 못 펴는 사람을 길에서 밀쳐내는도다.

아비와 아들이 한 여자에게 드나들며 방탕을 일삼는구나!” (2:6~7)

 

또한 이들 귀족과 지배층들은,

 

“정의를 땅에 떨어뜨리며,

성문 앞에서 시비를 올바로 가리는 사람을 미워하고

바른말 하는 자들을 싫어하며

힘없는 자를 마구 짓밟으며

그들이 지은 곡식을 거둬가는도다.” (5:7)

 

아모스 선지자는 이러한 가난한 백성들을 거스르는 것이 바로 <야웨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너희가 나를 거슬러 얼마나 엄청난 죄를 지었는지 나는 죄다 알고 있다.

죄 없는 사람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 앞에서 가난한 사람을 물리치는 자들아, 너무도 세상이 악해져서 뜻있는 사람이 입을 다무는 시대가 되었구나!” (5:12~13)

 

 

이러한 사회정치적인 불의 가운데 부산물로 늘어나는 것은 신당이며 성당이었다. 인간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민족적 이상>을 상실하게 되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곳은 결국 퇴폐한 교회당이었다. 아모스는 이들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베델에 가서 뿔소에게 아침마다 희생 제물을 드리고

사흘마다 십 분의 일세를 바치며

누룩 든 빵을 감사 제물로 살라 바치고

자원 제물을 수선스럽게 드리는 자들아,…” (4:4~5)

 

또한,

 

“사마리아 여신 아시마를 두고 맹세하는 것들,

단의 신이 살아 있다 하고

브엘세바의 신 <도드>도 살아 있다면서

그 신을 두고 맹세하는 것들아,” (8:14)

“너희가 즐겨하는 짓이란 고작 이런 것들이 아니냐?” (4:5)

 

아모스는 심지어 역사의 신 야웨를 믿는다는 신도들도 모두 형식에 흘러 겉치레뿐, 사회 속에 만연된 불의를 바로잡으려는 예언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야웨는 다음과 같이 탄식하고 있음을 예언했다.

 

“너희의 순례절이 싫어 나는 얼굴을 돌린다.

축제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 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친교 제물로 바치는 살진 제물도 보기 싫다.

거들떠보기도 싫다.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거문고 가락도 귀찮다.” (5:21~23)

 

이러한 종교마저 부패한 사회에 내리는 인과응보는 무서운 것이었다. 정체성을 상실한 개인과 민족에게 내릴 재앙은,

 

“적이 사방에서 이 땅에 몰아쳐 와

축성들을 허물고 궁궐들을 약탈하리라.” (3:11)

 

또한, 아모스는 <자주성>을 상실한 나라는 반드시 주위 강대국에 의해 망하고야 만다는 진리를 선포하였다. 역사의 신 야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돔과 고모라를 뒤엎어 버리듯

너희를 불 속에서 끄집어낸 부지깽이처럼 만들리라” (4:11)

“너희를 갈고리로 끌어내고 너희 자식들을 작살로 찍어낼 날이 이르렀다.

무너진 성 틈으로 하나씩 끌어내다 거름더미에 던지리라.” (4:2~3)

 

또한 부패한 겉치레뿐인 종교 회당에 대해 아모스는 예언하기를,

 

“이 사악의 성당은 쑥밭이 되고,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폐허가 되리라.

나는 칼을 들어 여로보암의 나라를 치리라.” (7:9)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아모스의 예언은 결코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서 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깨우쳐 역사의식을 가지고 세계정세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처한 역사적 상황을 직시하고 민족과 자신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이스라엘아, 살고 싶으면 네 하나님과 만날 채비를 하라”(4: 12)는 것이었다. 즉 역사적 심판을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려면 애웨 하나님을 찾으라고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살고 싶으냐?

나를 찾아오너라.

베델을 찾지 말고….

살고 싶으냐?

야웨를 찾아라.” (5:4~6)

“살고 싶으냐?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여라….”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여라.” (5:14~15)

 

사회정의를 부르짖은 아모스 선지자의 계시 중 가장 아름답고 핵심적인 부분에 이른다. 이스라엘이 살고 싶으면 겉치레뿐인 부패한 종교예식을 버리고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을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라”

 

는 것이다(5:24)

 

 

결론

 

 

아모스를 비롯한 이스라엘 대선지자들이 민족을 신비스런 관념 속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로서 일반 백성과 연결해 인식하려고 시도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왕족과 귀족만이 민족의 구성원이 아니라, 민족 속에서 <일반 백성들>이 주인임을 발견하여 하층민들의 역사를 그들을 위하여 쓰려고 시도한 아모스는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의 신, 야웨>의 본질과 통했던 것이다.

 

사막의 <모세 전통>에 깊이 그 근원을 두고 있는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은 이스라엘이 역사의 신, 야웨와 맺은 근본적인 언약은 결코 사회의 지배 계층만 인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백성은 <야웨 신> 앞에서 형제임을 믿는 신앙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아모스 자신은 어떤 궁실 사제처럼 권력의 시녀가 아니고 단지 서민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스라엘민족이 아무리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일지라도 참된 <언약의 민족>이 되려면 단지 일반 하층민들을 정의롭게 다룰 때만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사회정의>는 야웨 신과 맺은 <언약>을 실천하는 데서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아모스 선지자는 믿었다. 아모스 선지자가 믿었던 역사의 신 야웨는 오로지 선량한 이스라엘 하층민들을 지배층의 억압과 착취로부터 해방하는 <공의의 신>일 뿐이었다.

 

역사발전의 법칙이란 결코 어느 한 민족에게만 적용되는 특수한 법칙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다. 우리가 성서를 통한 이스라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바로 3,000년 전에 있었던 아모스 시대의 역사발전 법칙이 21세기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아모스가 남쪽 유다 출신이면서도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멸망하지 않도록 막기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거짓 궁실 사제들이 들끓는 베델과 사마리아에서 마구 저주를 퍼부으며 <민족적 각성>을 촉구한 것으로 보아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것은 사실상 단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요, 실제로는 <공동의 종교적 전통>을 지닌 <한 언약의 백성>으로서 통일국가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정치적 권력에 눈이 어두워 고의로 민족분단을 연장하던 위정자들과는 달리 남과 북의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일된 조국을 얼마나 갈망했는지는 남쪽의 유다 출신인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예언한 것을 보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모스 선지자가 노력한 것은 남북 위정자들이 아무리 분단을 고정화하려고 시도하더라도 <하나의 민족적 전통>, 즉 <야웨신앙>을 남북 백성들이 버리지 않고 지키는 한 언젠가는 통일된 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 아래 <민족적 이상>인 <야웨신앙>을 재부활하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아모스 선지자가 야웨신앙을 떠나 <금송아지>를 섬기는 베델의 직업 사제들에게 달려가 그들의 두목인 아마지야와 충돌하면서도 민족적 각성을 촉구한 것은 <민족의 얼>인 <야웨신앙>을 잃으면 이스라엘이 강대국에 망할 것이고 그런 결과는 남쪽 유다와 통일된 조국을 이루기는 고사하고 남쪽 유다마저 망하고 만다는 자명한 정치적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의 얼>인 <야웨신앙>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안에 있는 <생명의 근원>과 같은 것이기에 생명이 남아 있는 마지막 한순간까지 아모스 혼자라도 앞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여로보암 2세 때에 겉치레뿐인 종교예식에 빠져있던 백성들이 평범한 목자 아모스의 예언을 듣고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의 민족적 이상>인 <야웨신앙>으로 뭉쳐 대비했더라면 30년 후에 올 아시리아제국의 침공(722~721)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오직 공의를 물같이, 정의를 개울 같이 흐르게 하기 위하여> 아모스 같은 코리안 선지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코리안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은 남북분단이 지연되는 한 코리아 민족의 국력은 날이 갈수록 쇠퇴해가고 마침내 이미 신식민지 상태에 있는 이남이 완전히 미국화되면 그나마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자주성과 사회주의를 지키며 살려고 선군정치를 하는 이북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절감하기 때문이다.

 

아모스 선지자가 그렇게 뼈아픈 절규를 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에 절하며 술잔치에 바쁘고 야웨 신에게 형식적인 제사나 지내다가 결국 아모스가 예언한 대로 북조 이스라엘은 B. C. 722~721년 아시리아제국에 망하게 되니 그나마 독립을 유지하던 남쪽 유다도 약화하여 마침내 B.C. 587년 바벨론 제국에 패하여 귀양살이를 떠나게 되었다.

 

아모스 선지자같은 코리아의 무수한 예언자들의 절규를 듣고 여기서 그리고 지금 각성되어 우리 <코리안 민족의 얼>로,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인 <민족 자주정신>으로 뭉쳐 이남을 미제로부터 해방시키고 분단된 조국을 통일해야 겠다. 김정일위원장은 1994년 11월 1일에 발표한 그의 논문 [사회주의는 과학이다]에서 <자주성>의 중요함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은 생명이다. 사람은 자주적인 사회적 존재로서 그 무엇에도 예속되거나 구속됨이 없이 자주적으로 살 것을 요구한다. 사람이 자주적으로 산다는 것은 세계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권리를 행사하면서 사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주적 권리를 가지고 자주적 요구를 실현하면서 살아야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고 존엄 있게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자주성을 잃고 남에게 예속되어 있으면 목숨은 붙어 있어도 사회정치적으로는 죽은 몸이나 다름없다. 자주적으로 살려는 사람의 요구는 무엇보다 자주적인 정치생활을 통하여 실현된다. 사람이 사회정치적으로 예속되어 있으면 그 어떤 자주적인 생활도 할 수 없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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