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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02 06:53
<언약의 사랑>을 부르짖은 호세아 선지자
 글쓴이 : 최고관리자
 

<언약의 사랑>을 부르짖은 호세아 선지자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수소 소장)

 

 

역사적 배경

 

 

호세아 선지자의 활동경력은 북조 이스라엘의 번성기였던 여로보암 2세(BC 786~746)의 마지막 통치 기간과 BC 746년 여로보암 2세의 사망 후 닥쳐온 정치적 혼란 시기 두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대개 750년에서 732년까지 활동한 것으로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50년 동안 정치적인 침체상태에 있던 아시리아는 열정적인 왕 디글랏빌레셀(Tiglathpileser 3세, 745~727)가 등정하자 군사력을 증강하여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이 혼란기에 이스라엘은 단지 연속적인 혁명과 암살과 모반이 연이어 일어났다. 여로보암 2세의 사망 후 이스라엘이 멸망한 742~721년까지 근 20년 동안에 6명의 왕이 갈렸다.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리야는 왕위를 계승한 지 6개월 만에 살룸에 의해 살해되었고 살룸은 왕이 된 지 겨우 1개월 만에 므나헴의 반란으로 살해되고, 므나헴이 왕이 되어 BC 745년부터 738년까지 통치하였다. 이 므나헴의 통치 기간 아시리아가 침입하여 은 천 달란트를 아시리아 왕에게 바쳐 겨우 왕권을 유지하였다.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된 지 2년 만에 그의 부관이었던 베가에 의해 살해되고 베가가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동안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 3세가 쳐들어와 갈릴리지역 등 몇 지역을 점령하고 백성들을 사로잡아 아시리아로 끌고 갔다.

 

아시리아 왕은 호쉐아(Hshea)를 베가(Pekah) 대신으로 왕으로 삼아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했다.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 3세가 BC 727년에 사망하자 이스라엘 왕 호쉐아는 새로 아시리아의 왕이 된 살마네셀(726~722)이 전 아시리아 제국을 다스릴 능력이 없다고 잘못 판단하고 어리석게도 <여린 갈대>인 이집트를 믿고 바치던 조공을 거절했다. 아시리아 왕 살마네셀은 즉시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공격했다. 살마네셀 왕은 전사하고 그의 계승자 사르곤 2세(BC 721~ 705)가 나머지 과업을 완수하니 BC 721년 마침내 북조 이스라엘은 망하고 말았다. 사르곤의 연대기에 의하면 27,290명의 이스라엘인이 포로가 되어 잡혀갔다고 한다. 호세아(Hosea) 선지자는 이 비참한 이스라엘의 마지막 비극을 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쨌든 위에 지적한 비참한 혼란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각성을 촉구한 예언자였다.

 

 

예언의 내용

 

 

호세아의 예언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그가 바람기 있는 고멜이란 여성과의 결혼생활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달려있다. 호세아서 첫 3장(1장~3장)에 나타난 호세아의 결혼 이야기는 구약연구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호세아는 단지 그의 관심의 초점인 이스라엘과 야웨와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자신의 부끄러운 결혼생활을 소개한다.

 

호세아는 고멜과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는다. 그는 이 세 자식에게 상징적인 이름을 지어주었다. 첫아들은 이스르엘(Jezreel)이라 지었다. 이것은 예후가 엄청난 피의 숙청을 자행한 곳(열왕기하서 9장)을 상징하여 지은 이름으로 오래지 않아 예후의 후예들을 멸망시키라는 뜻이었다.

 

둘째 아이인 딸의 이름은 도루하마(동정을 받지 못하는 자란 뜻))라고 지었다. 야웨가 이스라엘에 대해 품고 있던 인내가 한계를 넘어 더는 이스라엘 가문을 불쌍히 여겨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뜻이었다.

 

셋째 아들의 이름은 로암미(나의 백성이 아니라는 뜻)라고 지었는데 이것은 야웨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의 결속>을 깨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거절했다는 상징이었다.

 

이제 호세아 선지자의 관심은 자식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의 어머니의 이야기로 옮겨간다. 2:2에 나타난 대로 고멜은 호세아와의 결혼계약을 깨고 호세아를 떠나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호세아는 그녀의 신실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결혼법을 넘어서서 고멜을 다시 용서하고 아내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3장에 표현된 대로 호세아는 음란한 전 아내 고멜을 돈을 주고 다시 사서 얼마간 훈련한 후 그녀를 그의 아내로 다시 맞이했다. 이와 같은 그의 구체적인 결혼생활을 통하여 그의 조국 이스라엘과 그 민족정신인 <야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고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야웨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신을 섬김으로써 큰 음행을 저지르고 있다.”

 

는 것이 호세아가 그의 결혼생활 체험을 통하여 얻은 교훈이었다. 호세아만큼 이스라엘 민족정신이 싹튼 <모세 전통>에 몰두한 선지자도 드물었다. 그는 그 당대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해석할 때 그의 마음속에 항상 그의 조상들이 당한 <엑소도스>, <광야생활>, <호렙산에서의 언약>, 그리고 <가나안 정복>을 염두에 두었다. 호세아는 자신을 모세의 후계자로서 <언약의 전통>을 <현재>라는 시간 속에 해석하는 자라고 간주했다. 역대의 위대한 예언자들이 그랬듯이 호세아 선지자도 이스라엘의 민족 신 야웨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생활에서 해방한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역사 속에 알려졌음을 강조했다.

 

“나는 이집트의 땅에서 나온 야웨니라.” (12:9, 13:4~5)

 

이 <민족해방의 사건>을 지금 매 순간 역사 속에서 재현함으로써 인간은 야웨의 백성이 된다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호세아는 <야웨와의 언약>을 <결혼>과 비유하여 해석한 최초의 이스라엘 선지자였다. 그는 <자연의 순환>을 언급함으로 야웨와의 결혼을 설명하는 대신에 사막에서 이루어진 야웨와 이스라엘 백성과의 <역사적 결혼>을 설명한다. 호세아가 이스라엘의 <역사적 결혼>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 것은 가나안 종교에서 말하듯 신과 여신과 맺은 결혼을 연구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음란한 아내 고멜과의 직접적인 결혼생활의 고민을 이해함으로 시작되었다. 고멜이 방탕한 여자가 되어 <결혼계약>을 깨고 다른 남자와 살듯이 이스라엘은 <자연신 바알>을 믿음으로 <역사의 신, 야웨>와 맺은 <역사적 계약>을 파기했다는 것이다. 호세아에 의하면 이 음란한 행위가 바로 이스라엘이 당하는 역사적 비극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직면한 모든 비참한 문제들은 단지 그 증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자가 혹은 남자가 일단 자신의 지조를 상실하고 나면 어떤 음란한 짓이든 자행할 수 있게 되고, 그 부작용으로 알코홀중독, 마약중독, 불면증, 식욕감퇴, 등 온갖 병에 걸리듯 민족도 <정체성>을 상실하고 나면 온갖 부작용이 다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위대한 선지자들이 지적했듯이 호세아도 종교란 필연적으로 다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지금의 여러 기성종교가 그렇듯이 종교란 개인이나 민족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찾게 하여 역사적 개인, 혹은 민족으로 성장 발전시키는 것을 막고 오히려 개인이나 민족을 순간적 환락 속에 빠뜨려 단순한 <신비주의>나 <경건주의>라는 도피소로 몰아넣어버리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는 호세아 시대의 바알종교와 마찬가지로 일반 백성들의 강제노동에 기반을 두고 단지 극소수의 왕족과 귀족들의 이익이나 대변해주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의 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으로 모여드는 것은 이집트에서 그들을 해방해준 <사회정의의 하나님, 야웨>를 믿고 그들도 고난받는 일반 백성들을 노예 신세에서 해방하겠다는 결단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종교로부터 무엇인가 아편 같은 황홀한 조화, 안보, 부, 그리고 평화를 얻기 위한 개인의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대한 선지자 치고 이스라엘이 당면한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을 떠나 몽상 속에서 예언한 선지자가 있었는가? 이스라엘이 처한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사회적 문제들>에 눈을 감고 <개인 구원>이나 외친 선지자가 어디 있었는가? <진정한 종교>란 아모스나 호세아가 되풀이하여 강조했듯이 백성들에게 <역사적 현실>을 올바로 보게 하여 각자 개개인이 역사적 존재로서 <역사의 주인>이 되어 사회의 부조리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시키는 기능을 했다. 개인의 이익에나 눈이 어두운 직업 사제들과 궁실선지자들은 실제로 이스라엘이 야웨와 맺은 결혼계약을 깨는 음란한 행위를 조장했다. 이와 같은 직업 사제들을 호세아는 다음과 같이 맹렬히 비판하였다.

 

“사제야, 내 백성이 다 너희와 같은 꼴이 되었구나.

너희 사제라는 것은 대낮에 거꾸러지고,

밤에는 예언자도 함께 거꾸러지리라.

이 백성은 너희 때문에 망한다.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해서 망한다.

너희 사제라는 것이 나를 알려고 하지 않으니

나도 너희를 사제직에서 몰아낸다...

이런 사제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나에게 짓는 죄가 많아진다.

그 자랑스러운 직책을 부끄럽게도 밥벌이로 만드는 것들,

내 백성들의 허물 덕분에 먹고 살며(They feed on the sin of my people.)

내 백성이 짓는 죄에 침을 삼킨다.

백성들은 사제를 닮게 마련,

그래서 나는 사제들을 그 행실을 따라 벌하고

그 행위를 따라 갚으리라(호세아 4:4~9).

 

이러한 사제들은 자신들의 사업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사회악>이 번창하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백성들이 죄를 범하면 범할수록 좋아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잘못된 사회구조>에는 관심을 쓰지 않고 죄를 짓고 병들어 찾아오는 가련한 교인들에게 일시적 치료나 해주고 그 대가로 헌금을 받아 호의호식했다. 인류의 죄를 강조하여 죄를 탕감하기 위하여서는 성수 주일을 지켜야 하고 십일조를 내야 하며 헌금을 많이 내어 탕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여 거대한 성전이나 짓고 선교에 힘쓰는 대형교회들은 호세아의 예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결국, 이러한 직업 사제들이 바라는 것은 개인의 이익이요 개인 구원이다. 전 사회가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자신만 깨끗하게 보존하면 구원이 오는 줄로 생각하고 오로지 사회악의 희생자들에게 소리 높여 <죄를 회개하라>고 외쳐댄다. 그러나 죄라는 개념은 이미 그 자체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 즉 <사회성>을 내포하고 있다. 죄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저질러지는 것이다. 개인 내면의 문제만이 아니다. 결국, 문제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 참된 <언약의 사랑>과 <신실성>이 빠져 있다는 것이 호세아의 깊은 통찰이었다.

 

 

언약의 사랑

 

 

이 <언약의 사랑>을 히브리어로 (hesed) )라고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 신세에서 해방한 사회정의의 하나님 야웨와 <충실한 언약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회 정의의 하나님 야웨와 맺은 <언약의 사랑>은 신구약성서의 근본정신을 구성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모든 병의 근원은 바로 이 (hesed)가 결여된 것이었다고 호세아는 예언하였다.

 

호세아에 의하면 역사의 신 야웨는

 

“제사를 원하지 않고, 신실한 사랑(hesed)을 원하며

번제보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한다.” (호세아 6:6)

 

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회정의의 신 야웨와 <올바른 언약의 사랑(hesed)>을 맺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어떤 개인의 사유물 같은 자기 자신의 투시물인 <우상>과의 이기적인 추상적 관계가 아니라, 인간을 종살이에서 해방하는 <해방의 신>과의 올바른 관계가 바로 지식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역사의 신, 야웨>를 안다는 것은 그가 활동하는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 속에서 인간 각자 각자가 직면한 <역사적 소명>을 아는 것이 바로 모든 <인식론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활동하며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야웨를 믿던 모든 예언자, 예수, 사도들, 모두의 삶 자체가 이미 예배였고, 그들의 삶 전체가 야웨의 화신으로서 야웨를 역사 속에 드러냈다. 그들은 구태여 교회당을 찾을 필요가 없었으며 교인을 모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가는 곳이 예배처였고 그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뜻을 전하는 교인이었다. 경건한 예배의식을 역사의 신 야웨는 받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고백이었다. 아니, 경건한 예배를 드릴만큼 조용히 앉아 있을 겨를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 것이다. 그들은 무수한 적들에 둘러싸여 감옥에 가기 바빴으니까.

 

 

예수와 호세아 선지자

 

 

호세아 선지자보다 약 750년 후에 나타난 예수는 그가 처한 역사적 현실이 너무나 호세아 시대와 같음을 절감했다. 로마의 속국에다가 나라의 통치자인 헤롯이란 자는 로마의 꼭두각시로서 이스라엘의 이익에 반하는 노릇이나 하고 있었고, 유대교인들은 종교 교리에 얽매어 인간을 해방하기는커녕 속박하고 있었고 형식적인 예식과 율법에 얽매여 있었다. 안식일 법을 수도 없이 많이 만들어 놓고 그 율법을 절대화하여 백성들에게 적용하니 가뜩이나 로마의 식민통치 밑에서 세금을 내랴, 강제노동하랴 시달리고 있는데 더욱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상황 속에서 다시 <역사의 신, 야웨>, <해방자>를 선포한 예언자가 예수였다. 그는 직업 사제도 아니요, 단지 천대받던 갈릴리에서 목수 일을 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예수가 그 당시 형식적인 종교 무리인 제사장,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비판하고 백성들을 종의 멍에에서 구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였다. 그의 인간해방운동은 <정치적 혁명>이나 <군사적 혁명>의 시도는 아니었으나 그 당시 하층민들에게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개인 각자 각자가 역사의 주인임을 불러일으켜 역사적 존재로 깨우치는 일이었다. 유대 땅에서 유대인들이 주인이라는 당연한 주장이 로마와 로마의 꼭두각시들인 헤롯과 종교집단에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예수는 매번 유대교의 정통성과 율법을 어겼다고 종교집단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두 번이나 이들 형식적인 종교집단에 말하기를 돌아가서 호세아서 6장 6절을 다시 읽어보라고 권고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예수는 어느 날 자기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길을 가다가 마태라는 세리를 만나게 되었다. 이 당시 로마제국의 관리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를 빠는 세리들은 죄인으로 낙인 찍혀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그를 제자로 삼았으며 마태복음에 표현된 대로, 그는 <여러 죄인>과 같이 먹고 마시었다. 그때 자신들만 깨끗한 체하던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요?” (마태복음 9:11)

 

그때 예수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도덕관념을 꾸짖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바치는 자선(hesed)이다’(호세아 6:6)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13)

 

또한 마태복음 12장 1~8에 나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 안식일 예수와 제자들은 밀밭 사이를 지나게 되었다. 그때 제자들은 배가 고파 밀이삭을 잘라 먹게 되었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예수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저것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는 호세아 6:6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바치는 자선(hesed)이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는 무죄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son of man)>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여기서 예수가 호세아서에서 인용한 자선(hesed)이란 결코 부유한 지배층들이 주는 값싼 동정이 아니다. 위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자선(hesed )이란 사회 속에서 두 당사자가 <언약의 관계>로 서로 책임을 지는 <신실한 사랑>을 말한다. 이미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사회정의를 실현할 책임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서 자선(hesed )을 실현할 의무가 있다. <사회정의>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율법주의를 무기로 무죄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는 거룩한 종교인들은 안식일의 주인인 인간의 아들들을 율법으로, 교리로, 헌금으로 얽어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남의 한 가톨릭 시인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한 민족도 한 인간도 전체 인류도 <자기 민족의 고요한 정서의 심부>에 도달할 때의 의젓하고 자랑찬 희열,

그것을 자유라고 부를 수 있다.

가톨릭적 감수성은 나를 부자유로 이끈다.

내가 구라파인이 아니고, 이곳 가톨릭이 식민주의 적이기 때문이다.

거절해야 한다. 나는 나의 <조선적 감성>으로 가야만 한다......

참된 신은 굵고 원대하며 우주와 세계와 미래를 채우는 자선(hesed)의 법이다.

그것은 건설하는 망치요, 씨뿌리는 거친 손이며, 수확하는 낫이다.

죄 속으로 웅크리지 말라.

너는 한 발짝도 못 나간다.

나가라 그리고 죄를 뛰어넘어라.

죄는 진보의 또 하나의 이름이다.

예수는 이 진보의 대가를 죄로 짊어졌다.

십자가다.”

 

아모스, 호세아 등 무수한 이스라엘 선지자들이나 예수가 몸부림치며 도달하려고 했던 <야웨신앙>이란 바로 위의 한 시인이 말하는 <자기 민족의 고요한 정서의 심부>가 아닐까? 엘리아 선지자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들은 <가느다란 여린 목소리>는 바로 오랜 역사 속에 누적된 민족전통의 소리요, 그 소리를 듣는 예언자 자신은 바로 그 전통의 호흡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무수한 이스라엘 예언자들이 그들의 전통신앙인 야웨신앙을 버리고 바알신앙을 믿는 것을 그렇게 반대했듯이 식민주의적인 기독교를 거절하고 <조선적 감성>으로 돌아가려 한 무수한 코리아의 선지자들은 그 속에서만이 민족의 단결, 민족적 이상, 민족적 소망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있다면 <조선적 감성> 속에서뿐이요, 식민지적 기독교 속에서는 부자유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우리가 믿는 <민족의 고요한 정서의 심부>인 코리아의 <천지인 합일정신>은 결코 죄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우리를 한 발짝도 진보하지 못하게 하는 바리새적 율법정신이 아니며, 수절이나 하며 자신의 금욕주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무죄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는 앉은뱅이 정신도 아니라, 굵고 원대하며, 우주와 세계와 미래를 채우는 <언약의 사랑(hesed)의 정신>, <자주정신>이다. 이 <언약의  정신>, 즉 <자주정신>은 사회의 부조리를 고치는 망치요, 오염된 밭을 갈아 새로운 씨를 뿌리는 거친 손이며, 수확하는 낫이다. 호세아가 믿었던 이 언약의 사랑의 신 야웨는 오늘날 분단된 코리아 반도에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며 피를 뿌리고 있다. 그러나 십자가 저 너머에는 희망의 문이 보인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녀를 꾀어내어 빈들로 나가 사랑을 속삭여 주리라.

거기에 포도원을 마련해주고

아골 골짜기를 희망의 문으로 바꾸어주리라.

그제야 내 사랑이 그 마음에 메아리치리라.

이집트에서 나오던 때, 한창 피어나던 시절 같이. (호세아 2:14~15)

 

십자가의 삶은 불안하며 고통스럽지만, 신앙의 사람은 인간이란 <역사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자기 민족의 고요한 정서의 심부>에 도달할 때만이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호세아를 비롯해 위대한 선지자들이 광야와 십자가를 인생의 출발지로 본 것은 중대한 관찰이었다. 사막에서, 십자가상에서 신앙의 사람은 모든 <거짓 안정>, 그리고 모든 <문화적 가식>을 벗어버리고 오로지 역사의 신, 민족의 정체성을 굳건히 믿게 된다. 이러한 십자가의 고뇌를 맛본 <인간의 자식들(sons of man)>만이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잃었던 포도밭을 되찾게 되고 <새로운 소망>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호세아 선지자와 예수가 전한 메시지의 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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