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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22 03:09
주체철학의 생활력과 견인력(2)
 글쓴이 : 최고관리자
 
 3) 의식성
주체철학이 새롭게 밝힌 인간의 본질적 속성중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의식성이다.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물질>과의 관계 속에서 <의식>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의식> <물질의 반영, 즉 객관세계의 반영>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주의는 의식의 본질을 물질세계, 즉 객관세계에서 찾았다. 이 경우 의식의 원천은 물질세계, 즉 객관세계에 있다. 물론 이 이론은 <의식>을 신비화하고 의식의 물질적 기초를 부정하고, 의식을 절대화하는 <관념론>을 반대하는 데서는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의식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이해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의식이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동물들도 감각, 지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개념과 판단, 추리라는 것을 동물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동물의 감각, 지각은 의식발전의 낮은 단계를 표현할 뿐이다. <의식>이라고 말할 때는 감각으로 출발해서 개념, 판단, 추리에 이르기까지 전일적인 과정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의식의 본질>을 마땅히 인간이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인간을 고찰의 중심에 놓고 의식의 본질을 논해야 의식에 대한 보다 높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강조하듯 객관세계를 정확히 반영해 가지고 객관세계의 특성에 맞게 활동해야만 행동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객관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행동의 성과를 거두기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된다. 그런데 인간은 객관세계의 법칙대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객관세계의 법칙의 작용도 자기에게 복종시키겠는가 하는 견지에서 활동한다. 인간은 객관세계를 복종시키기 위하여 객관세계를 자기의 요구에 맞게 개조하기 위해서 활동한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의 활동에서 <의식>이 노는 역할의 견지에서 볼 때 <의식>이라는 현상을 단순히 <객관세계를 복사, 모사, 촬영하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의식의 현상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요구> <이해관계>에 맞도록 활동한다. 인간은 객관세계가 하라는 대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고유한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객관세계를 자기에게 복무시키기 위하여 활동한다. 이 인간의 활동을 규정하고 지휘하는 것이 의식이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올바로 밝히자면 인간과의 관계 즉 사회관계에서 의식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이점을 고려하여 주체철학은 다음과 같이 의식성을 규정하고 있다.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인간은 객관세계를 있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복사해서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두뇌 속에 들어 온 형상도 목적의식적으로 개작하고 변형하여 앞으로 자기의 행동의 결과를 미리 예상하면서 행동의 목적을 세워 활동한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역시 인간과의 관계, 사회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의식이 물질세계의 반영이라는 것은 맞지만 의식의 본질을 거기서 찾는 것은 일면적이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객관세계의 반영이라는  데서 보다도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 인간의 생명의 중심인 뇌수가 인간의 활동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능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외부세계를 반영하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기초해서 외부세계에 대하여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 이다. 결국 의식이라는 것은 주체철학에 의하면 <인간의 활동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능>이다. 다시 말하면 의식이란 인간의 사회적 속성이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객관세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속성>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주체철학에서는 의식을 <사물의 본질과 합법칙성을 반영한 의식형태>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주체철학에서는 전자를 <지식>이라고 말하고, 후자를 <사상의식>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주체철학에서는 의식을 <지식으로서의 의식> <사상의식으로서의 의식>, 두 가지 의식형태로 구별하여 쓰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행동과 활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인 <사상의식>이다. <사상의식>은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기에 인간의 모든 행동과 활동을 조절통제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고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활동을 하게 하는 <추동력>으로 된다.
 
네째로, 그러기에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하여서는 <인간> <사상>을 발동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사상을 통하여 사람들이 깨어나 그들이 납득이 되어야 자연개조사업과 사회개조사업에 자진하여 나서게 되며 변혁적 열의와 창조적 적극성도 십분 발휘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주체철학은 모든 사업에서 사상사업을 앞세우고 있다.
 
사상의식 중에서도 세계의 주인, 자기운명의 개척자로서의 사람의 본성적 요구를 반영한 사상의식이 바로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자각이며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의지이다. 따라서 자연개조사업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끊임없이 성장발전시키는 일을 앞세워야만 자연개조사업과 사회변혁운동을 성공시킬 수가 있다. 자연개조사업과 사회변혁운동에서 사상사업을 앞세워 계속적으로 의식화작업을 심화시켜야만 사람들의 사상적 통일을 보장할 수 있고 그들의 단결과 협조를 이룩해 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의식적으로 자연을 개조하고 사회를 변혁하려는 사회변혁운동에서는 사람들을 계속적으로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자주적인 사상의식>으로 의식화시켜 변혁주체를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여야만 자연개조사업도 사회변혁운동도 성공시킬 수가 있다.
 
사실상, 이러한 의식화작업은 일회에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힘든 과업이다. 이 과업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지난 시기 소련과 동구사회주의 나라들에서 이 사상사업이 경시되었다. 사회변혁의 주체인 사람들을 교양하는 사상사업을 소홀히 하고 경제건설에만 집중하다 보니 경제건설자체도 침체에 빠지게 되었고 종국에는 적자생존의 법칙인 시장경제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변혁운동에서 사상사업을 포기하고 사람들을 사상적으로 병들게 하고 사회변혁운동의 목적을 변질시키고 파괴하게 되면 결국 강한 경제력과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소련과 같은 나라도 망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 있다.
 
다섯째로, 주체철학은 <주체사관><유물사관>의 차이점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주체철학은 사람 중심의 철학적 원리에서 출발하여 <주체의 사회역사관>, <주체사관>을 확립함으로써 선행 사회역사관의 제한성을 극복하고 사회역사에 대한 견해와 관점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맑스주의 철학은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사회역사에 적용하여 <유물변증법적 사회역사관>, <유물사관>을 세웠다. 우리는 물론 유물사관의 역사적 공적을 부인하지 않는다. 관념론과 형이상학에 기초한 비과학적인 사회역사관을 타파하는 데서 유물사관은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또한 사람이 객관적인 물질세계에서 살며 사회가 자연과 불가분리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 만큼 사회현상에도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법칙이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 운동에는 그에 고유한 합법칙성이 작용한다는 것을 보지 않고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사회현상에 그대로 적용하면 사회역사에 대한 일면적인 이해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운동은 자기의 고유한 합법칙성에 따라 변화발전한다. 사회적 운동은 세계를 지배하며 개조해 나가는 사람의 운동이다.
 
사람에 의한 세계의 지배와 개조는 결국 <자연개조>, <사회개조>, <인간개조> 사업을 통하여 실현되며 그 주체는 민중이다. 민중에 의하여 사회의 모든 물질문화적 재부가 창조되고 사회관계가 발전한다. <사회적 운동>은 민중을 주체로 하는 운동으로서 자연의 운동과는 다른 자기의 특성을 가진다. <자연의 운동>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들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 지지만 <사회적  운동>은 주체의 주동적 작용과 역할에 의하여 발생발전한다. 그러므로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밝힌 유물변증법의 원리들을 사회역사에 그대로 적용하여서는 사회의 본질도 사회적 운동의 합법칙성도 정확히 해명할 수 없다. 유물사관의 주되는 제한성은 <사회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옳게 밝히지 못하고 자연의 운동과 사회적 운동이 다 <물질적 운동>이라는 공통성을 기본으로 하여 사회적 운동원리들을 전개한 것이다. 그리하여 맑스주의 유물사관은 사회를 <사회적 존재> <사회적 의식>으로 구분하고 그 상호관계에서 사회적 존재에 규정적 의의를 부여하였으며 사회구조도 <생산력> <생산관계>, <토대> <상부구조>로 가르고 물질적 생산과 경제적 관계에 결정적 의의를 부여하였다. 이것은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질운동의 일반적인 법칙에 따라 변화발전한다는 유물변증법의 원리를 사회역사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맑스주의 창시자들이 물질세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사회역사에 적용하면서 고찰한 세계는 자연 뿐 아니라 사람도 사회도 물질적 존재라는 점에서 통일되어 있는 세계다. 사람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보지 않고 <물질로 통일되어 있는 세계의 한 부분>으로 보고 <물질세계의 일반적 운동법칙>을 사회역사에 그대로 적용하면 <사회역사적 운동>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사회도 사람의 자의적인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정한 법칙에 따라 변화발전한다. 그러나 사회에서의 법칙의 작용은 자연에서의 법칙의 작용과 본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자연에서는 법칙이 사람의 활동과는 관계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작용하지만 사회에서는 법칙이 사람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활동을 통하여 작용한다. 사회법칙에는 사회제도에 관계없이 모든 사회에 일반적으로 작용하는 법칙도 있고 일정한 사회제도에서만 작용하는 법칙도 있다. 모든 사회법칙은 사람의 활동을 통하여 작용하는 것 만큼 사람이 어떻게 활동하는 가에 따라 법칙이 순조롭게 작용할 수도 있고 그 작용이 억제되거나 제한될 수도 있다.
 
사회법칙이 사람의 활동을 통하여 작용한다고 하여 사회법칙은 <객관적 성격>을 띠지 않는다거나 사회적 운동에는 <자연발생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정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지어지면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한 사회법칙이 작용하며 따라서 그것은 자연법칙과 같이 객관적 성격을 띤다. 사회적 운동에 자연발생성이 작용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 못하고 또 그것을 충분히 발양시킬 수 있는 사회제도가 세워지지 못한 것과 관련된다.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높아지고 그것을 충분히 발양시킬 수 있는 사회제도가 세워지면 사람은 더욱 더 객관적인 법칙의 요구에 맞게 활동하게 되며 자연발생성의 작용범위도 더욱 더 좁아지게 된다. 사회의 발전은  민중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과정이며 민중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높아지고 그 요구에 맞게 사회제도가 완성되면 사회는 더욱 더  민중의 목적의식적인 활동에 따라 발전하게 된다. 이것은 주체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에 의하여 변화발전하는 사회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이 전면적으로 관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주의 창시자들이 물질세계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사회역사에 적용하여 유물변증법적 사회역사관을 확립하였지만 그들도 현실적으로 사회적 운동에서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만으로는 풀 수 없는 많은 문제들에 부닥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회적 의식은 물질경제적 조건을 반영하여 발생하지만 물질경제적 조건에 반작용을 하며 정치도 경제에 의하여 규정되지만 경제에 반작용을 한다는 이론을 비롯한 일련의 이론들을 제시하여 유물변증법적 사회역사관의 일면성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맑스주의 유물사관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운동과 사회적운동의 공통성을 기본으로 보는 사회역사관이며 그 이론으로써는 사회의 발전과정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제한성을 면할 수 없었다. 앞에서 이미 강조했듯이 주체철학과 선행철학의 근본적 차이는 결국 사람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맑스주의철학은 사람의 본질을 <사회관계의 총체>로 규정하면서도 사회적 존재로서 사람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옳게 밝히지 못하였다. 맑스주의철학이 사회적 운동원리를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기본으로 하여 전개한 것은 바로 사회적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해명하지 못한 것과 관련되여 있다.
 
이와 같이 주체철학은 <사회적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명시한데 기초하여 인간을 위주로 하여 사회를 포함한 세계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사물현상들의 공통성>을 밝히고 그에 기초하여 세계에 대한 견해를 밝힌 유물변증법적 이해와의 근본적 차이는 바로 이것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 <인간의 운명개척의 방도>를 밝혀야 할 철학의 사명에 맞게 세계에 대한 견해가 밝혀졌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하는 문제도 바로 이것에 의하여 결정된다.
결론
앞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시대의 발전은 철학의 발전을 동반한다.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민중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사회변혁운동의 끊임없는 확대발전은 이제까지 역사의 대상으로 취급되어 온 근로민중이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한 새로운 시대, <자주시대>를 탄생시켰다. 근로민중이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역량으로 등장한 새 시대인 <자주시대>는 그들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목적의식적으로 개척하며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간해방의 역사적 사명을 승리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철학의 출현을 요구하였다.
노동자계급이 자본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던 시기의 시대적 요청은 자본주의의 영원성을 설교하던 반동적 철학을 타파하고 자본주의의 멸망의 불가피성과 사회주의의 승리의 필연성을 신념으로 심어줄 수 있는 과학적 철학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봉건의 잔재이면서 지배계급에 의해 악용되고 있던 <신중심의 철학> <절대이념>을 내세우는 <객관적 관념론적 철학>과 고립된 <자아>를 내세우는 <주관 관념론적 철학>을 극복하고 <유물변증법적인 철학>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은 앞에서 이미 길게 설명했듯이 <물질과 의식의 관계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토대로 하여 그 토대 위에서만 정립될 수 있었다. 물질-의식문제의 과학적 해결위에서 역사발전의 주재자는 <> <절대이념> <자아>도 아니라 물질의 <생산양식>이며 역사는 생산양식의 교체의 역사이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점유의 사적 성격간의 모순,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하여 자연사적으로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이 명시되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의식>이 객관적 필연성을 반영할 뿐 아니라 객관세계를 정확히 반영한 의식은 거기에 능동적으로 반작용한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이러한 이론이 민중에게 파악되면 거대한 물리적 힘으로 변화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강조했듯이 <물질과 의식의 관계문제>를 기본 틀로 하여 전개되고 물질적 생산양식을 역사의 주재자로 본 마르크스주의는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보는 대로 나아갈 수 없었으며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해명할 수가 없었다. 민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목적의식적으로 역사와 자기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새 시대, <자주시대>의 요청은 위에서 길게 설명했듯이 <세계와 인간의 관계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명에 기초하여서만 해결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주체철학에 의하여 세계에 대한 주체적 관점과 입장이 확립됨으로써 철학의 구성체계가 올바로 밝혀지고 철학이 인간의 <운명개척의 방도>를 밝히는 자기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운명개척의 방도를 밝히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철학의 시각에서 볼 때 철학은 마땅히 세계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해야 한다. 사회적 인간의 본성적 요구인 인간의 <자주적 요구와 이익>으로부터 출발하여 모든 사물을 보고 평가하며 인간의 <자주성의 실현>에 모든 것을 복종시키는 관점과 입장이야말로 세계의 지배자로서의 인간의 지위를 고수하고 세계를 인간을 위한 세계로 개조하기 위한 인간의 창조적 역할을 확고히 담보하는 관점과 입장이다. 이처럼 인간을 위주로 하여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과 입장을 밝힘으로써 주체철학은 지난 시기의 철학적 세계관의 일면성을 극복하고 세계의 본질과 인간의 운명문제에 가장 심오하고 포괄적인 해명을 준 새로운 철학으로 될 수 있었다. 또한 주체철학은 <혁명실천의 요구>를 반영하고 <혁명실천>에 의하여 그 진리성과 정당성이 확증된 가장 우월하고 생활력 있는 철학이다. 오늘 국제무대에서 주체철학에 대한 관심이 더욱 더 높아지고 주체사상 신봉자 대열이 늘어나고 있는 사실은 주체철학이 변혁실천에 가장 올바른 해답을 주는 철학이라는 것을 뚜렷이 실증하여 준다. 우리들은 주체철학의 <과학성> <진리성>, <독창성> <우월성>을 올바로 이해하고 주체철학을 지침으로 하여 모든 철학이론들을 분석 판단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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