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1-01 09:31
에돌지 않고 똑바로 사는 삶
 글쓴이 : 최고관리자
 

에돌지 않고 똑바로 사는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2014 한해를 보내고 2015 신년을 맞는 시각, 나는 한해의 다사다난했던 일들뿐 아니라 70평생을 두고 내가 몰두해 왔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본다. 나는 6.25전쟁 남하하여 갖은 가난과 고생을 겪었지만 부자가 되기 위하여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 존재의 의미가 무엇이냐,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몰두하며 살아왔다. 한마디로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내가 정신적으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기독교였다. 그러기에 기독교 목사들이나 학자들이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여러 글에서 이미 밝혔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내가 원한다고 내가 원하는 사상에 바로 접근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는 것은 진리이다. 내가 그래도 이남에서는 자유적인 기독교 장로회에서 나온 [구약개론] 읽고 문자주의 기독교에서 탈피하여 보다 진보적인 사상을 추구했지만 바탕이 관념론에서 탈피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그와 비슷한 다른 관념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전공과목은 공부하지 않고 매일 실존주의에 빠져 니체와 키엘케골, 사르트르, 전혜린, 등에 몰두하였다. 당시 나는 20 년간 믿었던 기독교에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하여간 존재의 의미와 생의 최고가치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만 같았다. 누가 말했듯이 인생은 극복되어할 존재라고 생각되었다. 키엘케골이 강조했듯이 내면적인 주관(subjectivity) 강화해야 진리에 도달할 있다고 생각하고 나도 진리에 도달하려고 전력을 다하였다. 그런데 사르트르가 지적했듯이 내면적 자아 속에 아무리 파고들어 가봐야 결국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자본가에게 착취와 억압을 받고 실제로 고생하고 있는 노동자 대중을 보라, 그들의 구체적인 사회적 문제들 속에서 의미를 찾으라는 메시지가 잠자던 나를 깨우쳐 주었다. 실존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가지<branch> 학문에 불과하다고 사르트르는 지적했다. 나는 미국에 와서야 비로소 <사회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서도 처음으로 알고 연구를 시작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나로 하여금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형이상학적인 관념론을 극복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관념이 아니라 물질경제중심의 마르크스주의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다 처음으로 이북의 김주석이 창시한 사람중심의 주체사상에 접한 것이 1980년대 초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추구해 왔던 주체사상이라는 최고의 가치, 최고의 사상을 발견한 것이 나이 34세가 되어서였다. 내가 어떻게 형이상학적 관념론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사상적 변천을 겪게 되었는가,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서 주체사상으로 변천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서는 이미 여러 글에서 다루었기에 여기서는 내용을 생략한다.

 

다만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가 인생의 최고 가치를 추구하여 마침내 그것을 찾았을 때는 이미 34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나와 동시대를 분으로서 하나의 낭비도 없이, 하나도 에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서부터 곧바로 인생의 최고가치를 접하고 분이 있었으니 그분이 바로 김정일위원장이었다. 나는 돌고 돌아 에돌아 34 만에 비로소 주체사상에 접한 인생을 되돌아보며 그를 한없이 부러워하고 참으로 존경하지 않을 없다.

 

그는 1942 백두산에서 태어나자마자 반일혁명투사들에 둘러싸여 귀여움을 받고 성장하였다. 항일혁명의 총포성과 세찬 백두산의 비바람, 눈보라 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성장하였고 항일혁명투사들에 둘러싸여 어려서부터 혁명사상에 접하며 성장하게 되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동서고금의 이름난 책들을 읽었으며 마르크스와 레닌을 비롯한 위대한 진보적 사상가들과 인물들의 전기를 섭렵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게바라, 카스트로, 수카르노, 모택동, 주은래, 등의 세계적인 혁명가들을 주석과 함께 접견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인 김주석을 따라 농어촌과 공장을 다니면서 노동의 귀중함을 깨닫고 근로 민중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갖기 시작하였다.

 

김정일위원장은 어떤 사상을 접하든지, 어떤 인물을 만나서 대화하든지 김주석의 주체사상이라는 잣대로 평가하면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버릴 것은 버리었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기가 익숙한 사상에 빠져버리기 쉽다. 자기가 익숙한 사상을 절대화 하여 교조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쉽다. 위대한 선생이 옆에 없는 자기가 접한 사상을 객관화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정일위원장은 바로 옆에 위대한 스승인 김주석이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모든 사상과 사건, 사물을 대할 주석께서 이미 혁명활동을 통하여 경험한 자주적 입장, 자주적 관점으로 판단하게 되었다. 이것이 김정일위원장으로 하여금 에돌지 않고 바로 최고의 가치, 최고의 사상으로 나갈 있게 요인이었다.

 

나는 연말을 맞으며 내가 김정일위원장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그가 근본적으로 나의 잘못된 생각들을 바꾸어 놓은 가지 이론들을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로, 그는 나로 하여금 물질경제중심의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사람중심의 주체사상으로 이끌어준 은인이었다. 이에 대한 글은 이미 [사회 역사관의 정립] 대한 나의 글과 다른 글들에서 자세히 설명했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여기서 사람이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사진 사회적 존재를 말한다는 점만을 강조하고 싶다.

 

둘째로, 그는 나에게 사람의 행동, 활동에서 사상의 중요성을 깨우쳐준 분이었다. 나는 <사상> <지식>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사상의식이 높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김정일위원장은 내가 아끼고 여러 읽은 논문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교훈과 우리 당의 노선]에서 다음과 같이 새로운 사실을 지적해주었다.

 

우리 당은 문화 일반으로부터 사상을 분리해내고 사상의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상론을 내놓았습니다.”

 

조용히 생각해 보라. 우리의 행동, 활동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결국, 사람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상의식이다. 사실상 마르크스주의 이전의 관념론에서는 사상의식이 신비화되었고, 유물론에서는 물질만이 강조되다 보니 사상의식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못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는 <사회적 존재> <사회적 의식> 규정한다는 원리로부터 의식은 존재를 반영하지만, 그에 반작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주의는 의식을 주로 사물의 본질과 운동법칙을 밝히는 지식으로 보았다.

 

김위원장은 사상의식은 지식과는 달리 사람의 생활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로 보고 자연과 사회를 개조 변혁하는 데서 사람들의 사상이 기본이며 사상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사상론> 제창하였다. 물론 그는 물질적 생산과 정신적 생산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경제발전이 사상의식 발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사상의식은 오직 물질적 조건에 의해서만 규정된다고 보거나 객관세계를 반영만 한다고 보는 관점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는 지적하였다. 진보적인 사상이란 민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나타나는 것이며 언제나 현실보다 앞서나간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1960년대 중반에 일부 이북의 학자들이 사상혁명을 선행하는 것은 물질의 일차성에 관한 유물론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오자 김위원장은 사람이 물질적 존재라고 해서 물질 일반에 용해하고 사상의식은 객관적인 물질적 존재와 구별되는 관념적이라고 해서 혁명과 건설에서 사상의식이 노는 역할을 부인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사상의식은 사람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나오는 것이지 신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사상의식은 사회적 존재인 사람만이 가지고 있고 지식과는 달리 사물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과 태도로 표현되며 언제나 사람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특성이 있다고 그는 밝혀주었다.

 

사상의식은 사람들의 계급적 출신과 경제생활의 처지, 사회역사적 조건과 주위환경, 등에 기초하여 형성되며 실천투쟁 속에서 확고해지고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한다고 김위원장은 사상의식의 형성발전에 대한 법칙을 해설해주었다.

 

사상의식 중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의식이 바로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라고 그는 보았다. 자주적인 사상의식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자각이며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의지이다. 이와 반대되는 의식이 바로 <노예적 굴종 의식>이며 대표적인 것이 <사대사상>이다.

 

사람들의 행동은 물론 사회 계급적 처지에 기초를 두며 그것에 의하여 제약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 계급적 처지는 사상의식을 통하여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김위원장의 예리한 판단이다. 이남의 부유한 상류층의 자녀들도 사상적으로 의식화 되면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그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사회변혁운동에서 사회계급적 출신과 관계없이 자주적인 사상의식만 가지고 있으면 동지들끼리 서로 믿고 함께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로부터 배웠다.

 

김정일위원장은 사회변혁운동에서 발휘되는 사람들의 의지와 투쟁력도 사상의식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았다. 민중의 창조적 능력은 무한하지만, 사상적으로 각성하지 못하면 그것이 높이 발양되지 못한다. 따라서 김위원장의 사상론은 사람들의 사상을 기본으로 틀어쥐고 나가는 것을 사회변혁운동에서 견지해야 일관된 원칙이라고 강조하였다.

 

셋째로, 내가 김정일위원장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은 이론 다른 하나가 바로 <수령론>이다. 김위원장은 수령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과학적 해명에 기초하여 수령론을 체계화하였다. 그는 사회변혁운동에서 수령문제를 기본적인 핵심문제로 보았다. 민중에게 사상을 주고 전략전술을 제시하고 민중을 일심단결시키는 사상이론의 뇌수, 단결의 중심이 바로 수령이라고 그는 밝혀주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적 영웅이 아니라 민중이 역사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내가 이미 [사회 역사관의 정립]이라는 논문에서 강조했듯이 마르크스주의의 이러한 이해는 사회발전의 기초에 생산양식이 놓여있고 사회역사발전의 추동력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며 역사발전과정이 자연사적 과정이라는 이론의 안에서 확립되었기에 마르크스주의는 개인과 민중의 수령을 구분하지 못하고 수령의 역할을 개인의 역할에 용해하는 실수를 범하였다. 김위원장은 민중의 수령은 민중의 뇌수이며 중심이지 개인이 아니므로 역사발전에서 민중의 역할과 수령의 역할을 대립시켜서는 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수령은 개인이 아니라 수령, , 군대, 대중으로 이루어지는 혁명의 주체,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뇌수이고 중심이며 사상과 영도, 단결의 중심으로서 민중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수령의 후계자는 수령의 이와 같은 절대적 지위와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는다고 그는 보았다. 이러한 그의 수령론의 견지에서 보면 민중이 수령을 존경하고 수령과 사상, 숨결, 운명을 함께하는 혼연일체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수령이 민중의 최고 뇌수, 단결과 영도의 중심으로서 민중의 운명개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김위원장의 수령론은 <혁명의 주체> 대한 독특한 이론에 근거하고 있는 독창적인 이론이다.

 

따라서 넷째로, 내가 김위원장으로부터 배운 하나의 중요한 이론은 바로 위에 언급한 혁명의 주체에 관한 이론이다. 그는 혁명의 자주적 주체가 수령, , 군대, 대중을 구성요소로 하고 있으며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당과, 군대, 대중이 사상적으로, 조직적으로 결속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논문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인민 대중이 혁명의 자주적인 주체로 되기 위하여서는 당과 수령의 영도 밑에 하나의 사상, 하나의 조직으로 결속되어야 합니다. 조직 사상적으로 통일 단결된 인민 대중만이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갈 있습니다. 혁명의 주체는 수령, , 대중의 통일체입니다.”

 

역사의 주체는 언제나 민중이었지만 착취사회에서 민중은 자기의 뜻에 따라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의사에 따라 역사를 창조해 왔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민중은 아직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라고 없다. 민중은 자기의 당을 가지고 뇌수인 수령을 중심으로 사상 의지적으로, 조직적으로 결합할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참다운 자주적 주체가 있다는 것이 김위원장의 견해이다.

민중은 수령, , 군대, 대중의 통일체를 이루지 못하면 혁명의 자주적인 주체가 없으며 자주적인 주체가 되지 못하면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없게 된다.

 

김정일위원장은 수령론을 <사회정치적 생명체> 대한 이론과 결합하여 해설하였다. 바로 위의 논문에서 김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는 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만큼 거기에는 사회적 집단의 생명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개별적 사람들의 생명의 중심이 뇌수인 것처럼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은 집단의 최고 뇌수인 수령입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하여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면 개인들의 각기 다른 요구와 능력을 집단의 공동 요구와 능력과 결합해 통일적으로 실현하여야 하며 반드시 집단의 생명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중심이 바로 수령이라고 김위원장은 보았다. 그에 의하면 수령은 민중의 자주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분석 종합하여 통일시키는 중심인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민중의 창조적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수령의 절대적 지위와 결정적 역할은 수령의 후계자에 의해 계승된다고 김위원장은 설명하였다. 민중의 자주위업은 대를 이어 계승 완성되기 때문이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뛰어난 영도력, 고귀한 덕망을 체현한 수령의 후계자는 민중의 영도자로 추대되며 대를 이어 민중의 자주위업 수행에서 수령과 동일한 절대적 지위와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고 그는 강조하였다.

 

위에 언급한 김정일위원장의 사상론과 수령론, 그리고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아주 독창적인 이론으로서 그의 사상 이론적 업적 중에서 나에게 가장 감동을 이론이다. 이처럼 그는 인류의 자주위업, 사회주의 위업을 완성해 나가는 데서 제기되는 무수한 이론 실천적 문제들에 과학적 해답을 주는 새롭고 독창적이며 심오한 이론을 끊임없이 내놓음으로써 김주석이 창시한 주체사상이 더욱 생명력을 가지고 사회변혁운동을 추동하는 향도이념으로 빛을 발하게 하였다.

 

만약 내가 김정일위원장이 위와 같이 심화 발전시킨 주체사상에 대한 독창적인 이론들을 접하지 못하고 살았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살까? 2014년을 보내고 2015년을 맞는 역사적인 시점에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내가 아무리 세상에서 출세했더라도 개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내가 만일 김위원장이 밝혀준 우리 민족, 민중이라는 <사회정치적 생명체> 연결되지 않고 개인으로 아무리 출세하여 산다고 해도 나는 <영생의 > 전혀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생명인 자주성과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수령, , 군대, 대중이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룬 집단에 내가 소속되지 못하고 개인으로 살았더라면 개인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느냐고 자문해본다. 김위원장은 나에게 영생하는 삶을 가르쳐준 생명의 은인이다. 2014년을 보내고 2015년을 맞는 시점에서 나는 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김위원장의 에돌지 않고 직선으로 불같이 살다 일하던 현장에서 서거한 고귀한 생을 되돌아보며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에돌지 않고 직선으로 70년간 알짜배기 삶을 그를 한없이 부러워하고 존경한다


 
   
 


Copyright @ 2012~2014 재미자주사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