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6-04 23:49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글쓴이 : 최고관리자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나는 학자이기 때문에 이북을 방문하면 여기 저기 관광을 하는 것보다 주로학자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사실을 알고 이번에 이북을 방문하였을 때 나를 안내하는 지도원이 한 젊은 주체사상 학자를 고려호텔로 모시고 왔다. 나를 지도해주던 스승들은 이미 작고하여 더 이상 만날 수가 없다. 나는 이번에 만난 젊은 학자와 3차에 걸쳐 주체사상에 대하여 긴 대화를 하였다. 첫날에는 주로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을 이미 나는 여러 차례 소개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소개하는 내용은 젊은 이북의 학자가 주체사상에 대하여 새롭게 해설한 내용이라는 사실이다. 그와의 대화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철학이란 세계관을 주는 학문이다. 철학의 사명은 세계관을 줌으로써 인간의 운명개척의 방도를 밝히는 데 있다. 세계관이란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 입장이다. 철학의 근본문제란 세계관을 세우는 데서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가장 기초적이고 출발적인 문제이다.
 
종래에는 물질과 의식, 존재와 사유의 관계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삼아 왔다. 이 문제는 물질의 일차성, 존재의 일차성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적 원리에 의하여 과학적으로 해명되었다.
 
주체사상은 세계의 시원문제가 유물론적으로 밝혀진 조건에서 세계와 사람과의 관계문제,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그에 과학적인 해답을 주었다. 그것이 바로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이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를 깊이 체득하는 것은 주체사상의 진리성과 그 위대한 생활력을 확고한 신념으로 간직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를 깊이 체득하지 않고서는 혁명적 수령관도 사상적 신념으로 만들 수 없으며 사회정치적 생명이 육체적 생명보다 더욱 귀중하다는 진리도 똑똑히 이해할 수 없다.
 
올해 2015년 공동사설에는 오늘의 격동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주체사상, 선군사상으로 전당, 전군, 전민을 무장시키기 위한 사업을 더욱 줄기차게 벌려나가야 한다고 강조되어 있다.
 
1.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김정일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주체사상은 사람을 위주로 하여 철학의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를 밝혔습니다.”([김정일 선집] 7, 150페지)
 
일반적으로 <철학적 원리>는 세계관의 기초에 놓여 있는 근본이치를 말한다. 철학적 원리가 어떠한가에 따라 해당 사상의 철학적 세계관이 결정되며 사상의 혁명성, 과학성이 좌우된다. 사상의 위대성을 담보하는 철학적 원리는 사람을 위주로 하여 철학의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해답을 주는 사람위주의 철학적 원리이다.
 
그것은 사람위주의 철학적 원리를 초석으로 하고 있는 혁명사상만이 사람이 사는 세계의 본질과 그 변화발전의 합법칙성을 명확히 밝히고 민중의 운명개척을 위한 가장 정확한 투쟁방도를 제시하는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되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그에 해답을 준 사람위주의 철학적 원리이다. 주체사상은 사람위주의 철학적 원리를 기초로 하고 있음으로 하여 가장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세계관을 밝히게 되었으며 우리 시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되었다.
 
그러면 주체사상의 기초인 사람위주의 철학적 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1)그것은 첫째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의미이다.
김주석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의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자주적인 존재이므로 주위세계에 예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면서 삽니다.([김일성 저작집] 36, 280페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사람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는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세상만물의 지배자로 우뢰와 번개의 신인 <제우스>라는 신화적 존재를 내세우고 있다.
 
또한 여러 종교 교리들에서는 세상만물의 창조자, 지배자가 <>, <하느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실지 세계의 통솔자가 제우스나 하느님인가? 인류의 지성과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오늘날 세계의 지배자가 그 어떤 신이나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나 종교 교리들에서 전지전능한 존재로 내세우는 하느님은 다 사람이 만들어낸 실체가 없는 허황한 것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 이외의 다른 모든 생명물질들도 세계의 지배자로 될 수 없다. 세계에 존재하는 무생명 물질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사람 이외의 다른 모든 생명물질들은 자연에 의하여 전적으로 지배되고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지구상에서 꿀벌들이 사라져간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지구의 생태환경이 꿀벌이 살아가는 데 매우 불리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밀림속의 제왕이라고 하는 사자나 바다의 맹어라고 하는 상어도 먹을 것이 없으면 살수 없다.
 
이것은 사람 이외의 모든 생명물질이 주위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있다. 그러면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사람은 주위 세계에 종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면서 자기에게 복무하도록 만들어나가는 유일한 자주적 존재이다. 사람들은 짐승들을 길들이고 있으며 막을 수 없다고 하던 홍수와 가뭄 피해도 없애고 있다. 현시기에 와서 사람들은 신비한 세계로만 알던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며 달나라 여행을 하고 우주공장, 우주발전소, 우주도시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람은 사회제도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개조 변혁해 나간다. 그것은 인간을 신분적 예속의 올가미에 몰아넣고 착취하던 봉건제도가 자본주의제도로, 사람들을 돈의 노예로 만드는 자본주의 제도가 사회주의 제도로 교체되어나가는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이 실증해 주고 있다.
 
사람의 활동을 떠난 사회의 형성과 변화발전이란 있을수 없다. 사람은 주위 세계에 종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주위 세계를 지배하면서 사는 존재이므로 세계의 유일한 주인으로 된다.
 
사람은 또한 자기 운명의 주인이다. 운명문제는 생사존망과 생활처지에 관한 문제이다. 사람의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와 사람이 어떤 사회적 처지에 놓이게 되고 어떤 생활을 누리게 되는가 하는 것은 종교가 주장하는 것치럼 신에 의하여 미리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 사람의 운명을 책임지며 그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 어떤 존재도 없다.
 
사람의 생활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것만큼 사람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는가,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며 어떤 생활을 누리게 되는가 하는 것은 자연과 사회를 얼마나 자기를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드는가에 따라서 좌우된다. 사람의 운명의 지배자는 오직 사람 자신이다. 사람은 제손으로만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수 있으며 또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
 
김주석은 길림 육문중학교에 다니면서 청년학생 운동을 지도할 때였다. 그때 학생들 속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자의 자녀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 중에는 아직도 세상에 정말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김주석은 혁명적 영향을 받고 있던 조선인 소학교의 한 여선생에게 부탁하여 종교를 믿는 학생들을 데리고 예배를 보러 가게 하였다. 그 여선생은 어느 하루 학생들을 데리고 예배당에 가서 온종일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이시여, 배가 고픈데 우리에게 떡을 주시고 빵을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드리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떡이나 빵이 차례지기는 고사하고 배만 여전히 고프게 하였다.
 
이번에는 여선생이 학생들을 데리고 가을걷이를 하고난 밀밭에 가서 이삭을 줏도록 하였더니 굉장히 많은 이삭을 주어왔다. 김주석은 그 이삭을 털어서 빵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결국 그들은 그 빵을 먹으면서 하느님이란 없으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실천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결코 태여날 때 고사리같은 작은 주먹에 미리 정해진 운명을 쥐고 태여나는 것도 아니며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가는 존재도 아니다. 사람은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있으며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도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다음으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김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창조적인 존재이므로 주위 세계에 순응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하면서 삽니다.”([김일성 저작집] 36, 280~281페지)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 변혁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세계를 개조 변혁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세계를 개조 변혁하는 데 작용하는 요인들  가운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데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용한다. 실예로 농사를 짓는 데서 기후조건이나 토양조건, 기계수단 등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된다.
 
그러나 그러한 객관적 조건들과 물질적 수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사업이 저절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 조건을 주동적으로 마련하고 유리하게 이용하며 생산도구와 무기를 만들고 다루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어떻게 활동하는가에 따라서 객관적 조건을 옳게 이용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것이 좌우되며 또 위력한 도구와 무기가 생산되는가 안되는가, 그것이 효과적으로 이용되는가 못되는가가 결정된다.
 
지난 1950년대에 생산능력 6만 톤의 분괴압연기를 가지고 9만 톤을 생산할 것을 결의하고 12만 톤의 강재를 생산한 강선의 노동계급의 영웅적 투쟁경험과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와 그 추종국가들의 무력침공을 격퇴한 6.25전쟁의 역사적 경험은 생산에서나 전쟁에서나 생산도구와 무기가 아니라 사람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진리를 똑똑히 확증해주고 있다.
 
지난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이북 민중들이 남들같으면 영영 쓸어져 다시 일어서지 못할 엄혹한 난관과 시련에 처하여 있으면서도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인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혁명과 건설에서 사람들을 놀래게 하는 기적과 혁신을 일으킨 것도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력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 주고 있다.
 
사람은 또한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람의 운명은 세계를 개조 변혁해 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개척된다. 사람은 세계의 개조 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람의 운명은 사람 자신이 세계의 개조 변혁을 어떻게 해나가는가 하는데 따라 좌우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이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는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인간의 운명개척의 근본방도가 명시되어 있다.
 
2.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의 기초는 사람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다
 
김정일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사람이 세계의 주인으로서 특별한 지위와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김정일 선집] 7, 150페지)
 
사람에 대하여 정확히 설명하는 것은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밝히는 데서 출발점으로 된다. 지난 시기의 모든 철학들은 사람에 관한 문제를 대부분 사회적 관계를 떠나 순수 인간에 대하여서만 논의하였다. 사람을 주로 정신적인 존재로 보거나 자연적, 생물학적 존재로 본 것이 사람에 대한 지난 시기의 견해였다.
 
인간의 본질에 관한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에 의하여 처음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제기되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사람의 본질을 <사회관계의 총체>로 규정하였다. 사람의 본질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질이 사회적 관계에 의하여 규정되며 사회적 관계의 변화에 따라 변화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도 사람의 본질에 대한 관념론적, 형이상학적 견해를 반대하면서 사람의 본질이 사회적 관계의 의하여 규정된다는 것만을 강조하는 데 그치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해명하는 데로는 더 나아가지 못하였다. 지난 시기의 모든 철학들은 사람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주지 못하였기에 사람과 세계와의 관계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할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주는 철학적 원리를 밝힐 수도 없었다.
 
주체사상은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에 대한 철학적 해명을 주었다. 주체사상은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데로부터 출발하여 밝혔다. 주체사상이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밝히면서 출발점으로 삼은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말은 사람이 단순히 사회적 관계에 의하여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주동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생활하며 그것을 개조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주체사상에 의하여 밝혀진 사람의 본질적 특성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다. 주체사상에 의하여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해명됨으로써 사람위주의 철학적 원리를 밝힐 수 있는 이론적 기초가 마련되었다.
 
그러면 주체사상에 의하여 해명된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본질적 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과 그것이 사회적 속성이라는 데 대하여 두개의 체계로 나누어설명해 보자.
 
첫째로, 사람의 본질적 특성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다.
김정일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며 그것으로 하여 사람은 세계와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누려나가는 것입니다.”([김정일 선집] 9, 309페지)
 
<자주성>은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사회적인간의 속성이다. 김주석은 언제인가 이북을 방문한 어느 한 나라의 사회정치활동가를 만난 자리에서 자주성을 견지할 데 대하여 말하면서 사람의 본질적 특성인 자주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주었다. 주석은 이북에는 이전에 우리가 항일혁명투쟁을 시작할 때부터 부르던 노래가 있다. 우리의 청년들은 지금도 그 노래를 즐겨 부르고 있다, 그 노래에는 사람은 사람이라 이름을 가질 때 자유권을 똑같이 가지고 났다, 자유권 없이는 살아도 죽은 것이니 목숨은 버리어도 자유는 못버려라는 구절이 있다고 말하며 사람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려는 요구를 가지고 있다, 세계의 주인으로 자유롭게 살려는 사람의 성질이 자주성이라고 해설하였다.
 
사람은 자주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여 자연의 구속과 사회의 예속을 그대로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반대한다. 온갖 예속과 구속을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과 사회를 자기에게 복무하도록 만든다. 자주성은 사람이 사람으로 되게 만드는 근본적 속성, 사람의 제일 생명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이 생명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말한다.
 
사람은 육체적 생명과 함께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진다. 육체적 생명이 생명유기체로서의 사람의 생명이라면 사회정치적 생명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생명이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이 생명으로 되는 것은 자주성을 가져야 사람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존엄을 지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회정치적으로 자주성을 잃고 남에게 예속된다면 사람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짐승처럼 취급당한다. 사회정치적으로 남에게 예속된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없고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없으므로 비록 육체적 생명은 붙어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인간으로서는 죽은 몸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남의 노예가 되여 목숨이나 부지하는 것보다 자유를 위하여 싸우다 죽는 것을 더 영예로운 것으로, 고귀한 삶으로 여기는 것이다.
 
<창조성>은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사회적인간의 속성이다. 사람은 창조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여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간다. 동물들 가운데는 다람쥐와 같이 먹이를 날라다 저장하거나 까치와 같이 자기 둥지를 트는 것과 같이 신기할 정도로 생존활동을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목적의식적으로가 아니라 본능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사람은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살려는 요구로부터 출발하여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뚜렷한 목표와 방향을 세우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의도적으로 벌린다.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간다는 데 동물과 구별되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 있다.
 
사람은 또한 낡은 것을 개조하여 새것을 만들어낸다. 동물들의 먹이를 구하는 방법, 둥지를 트는 방법 등은 오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노동수단과 방법을 끊임없이 개조하고 발전시키며 자연과 사회를 자기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개변시켜 나간다.
 
오늘날 사람들은 지구상에 전혀 없던 새로운 물질들까지 만들어내려고 하고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현재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용하여 오던 기성의 물질들도 마음에 들지 않아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들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것은 나노기술에 의하여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나노기술이란 nm(나노메터)단위세계의 기술이다. 1nm 1m 10억분의 1이다. 나노세계는 마이크로세계의 1000분의 1밖에 안되는 작은 세계이다. 나노의 세계는 아주 작아 육안으로는 도저히 관찰할 수 없다. 나노기술의 목표는 하나 하나의 원자를 연결하여 어떤 제품이든 만들자는 것이다.)
 
나노기술에 의하여 인간은 화학반응 등으로는 만들 수 없었던 물질들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과학자들은 새로운 장치를 이용하여 원자를 한개씩 배열하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첨단 장비를 이용하여 단번에 한개의 분자씩 쌓아올려 아주 얇은 특수한 결정막을 만드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그결과 극소형화된 나노로보트가 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것이 사람의 혈관 속으로 들어가 혈관 벽에 붙은 침전물을 뜯어내고 해로운 세균과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한편 암세포가 악화되기 전에 찾아낼 뿐 아니라 피에서 독소를 제거하고 손상된 피줄을 수리하게 될 전망까지 열리게 되었다.
 
이처럼 사람은 목적의식적으로 낡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만들어내면서 자연과 사회를 더욱 더 자기에게 쓸모있고 이롭게 개변시켜 나가는 창조적인 존재이다.
 
다음으로,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사람이 의식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생물학적 본능의 요구를 통제한다는 하나의 사실만 놓고 봐도 잘 알 수 있다. 물론 사람도 생물학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 만큼 사람의 활동에도 본능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있다. 가령 먹고 싶다든가 자고 싶다든가 하는 것은 생물학적 본능의 요구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서 이러한 본능의 요구는 자기의 건강과 사회활동의 특성에 맞게 조절통제된다.
 
특히 사람은 의식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삶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배고픔도 참고 몰려드는 졸음도 이겨낸다. 자신의 모든 활동을 조절통제할 줄 아는 것이 바로 동물과 다른 사람의 특성이다.
 
사람은 의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여 그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이 자기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하는것을 판단한 기초위에서 모든 활동을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벌려나간다.
 
모든 활동을 아무런 착상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서 구상과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나간다.
 
사람은 의식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업과 생활에서 강한 의지와 투쟁력을 발휘한다. 사람은 의식성으로 하여 세계와 그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을 파악하며 자연과 사회를 자기의 요구에 맞게 개조하고 발전시켜나간다.
 
의식성에 의하여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이 담보되며 그 합목적적인 인식활동, 실천활동이 보장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고 힘있는 존재로 되며 세계를 숙명적으로가 아니라 혁명적으로,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하고 세계를 맹목적으로가 아니라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하게 된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람은 곧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이며 유일한 개조자이다.
 
다음으로, 사람의 본질적 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회적 속성>이다.
김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사람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사람이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람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사회역사적 과정에 형성되고 발전되는 사회적 속성입니다.”([김정일 선집] 14, 197페지)
 
사람의 본질적 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 물론 사람의 발전된 유기체를 떠나서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지만 사람의 생물학적 특성 그 자체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낳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살지 못하면 아무리 발전된 유기체를 가지고 있다고하여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지닐 수 없다.
 
소설 [로빈슨 크루소우]에는 무인도에서 생활한 한 선원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져있다. 그 선원은 대양 한가운데 있는 무인도에서 혼자 20여년 동안을 살았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그 섬을 찾아간 사람들은 그 선원이 짐승처럼 완전히 야생화되고 말까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이라기 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러한 실예는 20세기 60년대에 인디아의 수림 속에서 짐승의 무리와 같이 자라난 소년을 들 수도 있다. 사람들이 그 소년을 발견하였을 때 그는 말도 못하고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었으며 서서 걸어다니지도 못하고 짐승처럼 기어다니었다. 이것은 사람이 혼자 떨어져 살아서는 사람의 고유한 속성을 지닐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사회를 이루고 생활해나가는 과정에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며 자기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갈 줄도 알게 된다. 또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의식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람들의 사회생활을 통하여 형성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의 사회생활 과정에 대를 이어 전해지면서 역사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람은 사회적으로만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며 자기의 목적을 실현해 나간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오직 사회적 존재인 사람에게만 고유한 것이다.
 
이와 같이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해명에 기초하여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와 역할을 과학적으로 밝혀주는 독창적인 철학적 원리이다.
 
3.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가 밝혀주는 세계관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다
 
김정일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주체의 철학적 원리에 기초한 세계관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입니다.”[김정일 선집]7, 207페지)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 입장도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밝혀준다. 주체사상이 밝힌 사람중심의 세계관은 사람위주의 세계에 대한 견해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밝힌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견해는 세계는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된다는 것이다.
 
선행한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이 밝힌 세계에 대한 견해는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지고 물질의 운동에 의하여 변화 발전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세계가 사람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자체의 운동법칙에 따라 변화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가 그 어떤 신이나 신비로운 존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또 그에 의해서 변화된다는 견해를 타파하는 데서 큰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세계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세우는 데서 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지고 무엇에 의하여 변화 발전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의 주인이 누구이며 세계를 개조하는 힘은 어데 있는가 하는 것을 해명하는 것이다.
 
주체사상에 의하여 이 문제가 처음으로 해명됨으로써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밝혀졌다. 세계가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된다는 견해는 근로민중에게 자신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며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갈 수 있게 하는 가장 혁명적인 견해이다.
 
첫째로,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란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대하는 관점과 입장을 말한다. 그것은 사람의 이익으로부터  출발하여 세계를 대하는 것이다. 사람의 이익으로부터 출발하여 세계를 대한다는 것은 세계의 모든 것이 사람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해로운 것을 어떻게 이로운것으로 만들겠는가 또 이로운 것도 어떻게 하면 더욱 이롭게 만들겠는가 하는 견지에서 세계를 연구하고 실천활동을 벌려나간다는 것을 말한다.
 
둘째로,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란 사람의 활동을 기본으로 하여 세계의 변화 발전에 대한다는 의미이다. 사람의 활동을 기본으로 하여 세계의 변화 발전에 대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사람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세계를 개조하겠는가, 세계를 개조하는 데서 어떻게 하면 사람의 주동적인 활동을 더욱 강화하겠는가 하는 견지에서 모든 것을 대한다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주체적인 관점과 입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을 가지고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수 있게 하는 참다운 혁명적인 관점과 입장이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주체의 세계관은 우리 시대의 가장 올바른 세계관이다. 역사가 전진함에 따라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은 더욱 강화되고 그들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투쟁에 의하여 사람들의 의사에 지배되는 세계의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 와서 민중은 세계의 참다운 주인으로 등장하였으며 그들의 투쟁에 의하여 세계는 더욱 더 민중에게 복무하는 세계로 전변되고 있다.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민중의 지위와 역할이 비상히 강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더욱 힘있게 확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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