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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08 02:23
김정일위원장의 일생을 화고한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김정일위원장의 일생을 회고한다.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2017년 12월 17일은 김정일위원장이 서거한 지 6돌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으며 나는 김정일위원장이 민족의 자주와 주체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이북을 강성대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리고 인류의 자주화 위업을 위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한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돌이켜 보고자 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42년 2월16일 백두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4년 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졸업하자 그 해 6월19일부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들어가 지도원으로 일을 시작하여 과장, 부부장, 부장, 비서를 거쳐 1974년 2월13일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으로 추대되어 정식으로 후계자가 되어 활동했다. 김위원장은 1974년 제5기 제8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정식으로 후계자로 추대된 지 6일이 지난 1974년 2월19일 후계자가 되어 처음으로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 하기 위한 당사상사업의 당면한 몇 가지 과업에 대하여]라는 중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그는 여기서 김일성주석의 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처음으로 정식화하고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하기 위한 강령을 선포하였다. 이 역사적인 강령선포에 의한 [김일성주의]의 정식화는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김일성주석의 후계자인 김정일 위원장의 오랜 사색과 과학적 탐구의 결실이었다.



그러면 그의 사상의 순례과정을 더듬어보자.


백두산의 한 귀틀집에서 반일운동의 수령인 김일성장군과 항일투사 중 하나였던 김정숙여사 사이에 태어난 어린 김위원장은 항일전의 총포성과 백두산의 눈보라와 바람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잠들고 깨어났으며 나무로 만든 총과 검, 쌍안경과 조선지도를 가지고 놀며 유년기를 보냈다. 유치원시절에 이미 우리말을 깨우쳐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 시절에 이미 아버지의 서재에 있는 동서고금의 중요한 고전들을 포함한 여러 책들을 독파하였다. 어려서부터 서재에만 틀어박혀 책만 읽은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주석인 아버지의 현지지도에 직접 따라 다니며 공장과 농어촌의 현실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노동의 귀중함을 깨달았고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들 모두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웠으며 <토지개혁>을 비롯한 새사회건설의 숨결을 직접 체험으로 경험하였다. 6.25전쟁시기에는 어린 몸으로 직접 최고사령부의 작전대 곁에서 작전계획을 지켜보며 조선인민군의 백절불굴의 정신을 직접 체험하기도 하였다.

1960년부터 1964년까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던 시기 김위원장은 청년사업, 학교교육사업, 사회주의건설사업을 발전시키는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하였다. 그는 사회주의청년운동은 본질적으로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을 계승하고 완성해 나가기 위한 운동으로 보고 청년운동이 성공해야 사회주의혁명의 전도와 민족의 장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청년들 속에서 정치교양사업을 강화하여 그들을 참된 혁명가로 키우며 청년들이 사회주의 건설에서 선봉대, 돌격대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청년학생들과 함께 모범적으로 노동도 하며 실천적으로 모범을 보여주었다. 또한 대학시절에 주석과 함께 몸소 현지 지도를 다니며 <김주석식 사업방법>을 체득하였다. 그는 김주석식 사업방법은 민중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 모든 것을 그에 맞게 처리해 나가며 언제나 민중들 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모든 문제를 그들의 지혜와 힘에 의거하여 풀어나가며 민중을 더욱 더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존재로 키워나가는 참다운 사회주의적 사업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64년 봄 대학을 졸업 한 후 1964년 6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당무를 시작한 첫 시기 그는 우선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연구사업을 벌렸다. 맑스-레닌주의의 역사적 공적과 그 한계성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기초하여 주석의 독특한 혁명사상이 차지하는 세계사상사적 위상과 역할을 밝혀 주석의 사상을 정식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1966년 5월부터 1969년 7월까지 만 3년 2개월 동안 [자본론]을 비롯하여 맑스, 엥겔스, 레닌의 중요 저서들을 철저하게 연구분석하고 주석의 주체사상에 비추어 재평가하였다. 어떤 때는 간단한 표현을 놓고 며칠 동안 심사숙고하였으며 어떤 표현은 몇 달 동안 생각한 때도 있었다고 그는 고백하였다. 3년 2개월간의 고전에 대한 사색과 깊은 연구를 통한 통찰력을 키운 후에도 그는 주석의 혁명사상을 정식화하기 위한 탐구를 계속하였다. 1971년 백두산 무포낚시터에서 그는 얼마나 깊은 사색에 빠졌든지 고기가 연상 무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사상일꾼들에게 다음과 같이 결론지어 말하였다.

“수령님의 위대한 혁명사상은 그 어느 고전에도 비기지 못할 폭과 깊이를 가지고 있으며 수령님의 혁명역사는 인류가 영원히 심장 속에 간직해야 할 불멸의 영웅서사시입니다.”


이러한 사색과 과학적 탐구의 과정을 거쳐 인류사상사에서 주석의 혁명사상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었다.

“김일성주의는 현대의 기본 사조이다. 선행 사조와는 틀이 근본 다르다. 주체철학에 기초하고 있는 김일성주의는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예지가 도달한 과학이론의 총화나 집대성보다 더 높은 혁명사상의 최고봉이며 우리 시대의 유일한 시대적 지도사상이다. 김일성주의는 인류의 미래를 대표하고 인류의 존재와 더불어 영원할 주체의 혁명학설이다. 시간적으로 영원하고 공간적으로 세계를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1974년 2월19일 그는 마침내 주석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였으며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 하자는 강령을 선포하게 되었다.


그러면 김일성주의의 내용의 요지를 알아보자.


김정일위원장은 김일성주의를 “주체의 사상, 이론, 및 방법의 체계”라고 간단히 요약하였다<1974년 2월19일 논문, 11페이지>. 이 명제를 풀어 설명하면 [김일성주의]가 그 내용에 있어서 인간중심의 철학사상인 주체사상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구성체계에서는 주체사상을 핵심으로 하여 민중을 중심에 놓고 전개한 혁명이론과 민중의 역할에 기초한 전략전술, 그리고 민중을 혁명과 건설에 조직동원하는 지도원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또한 김일성주의는 우리 시대의 사상을 담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지금까지 역사의 대상으로 착취와 억압만 받아온 민중이 세계와 자기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자기의 자주적 지향과 요구에 맞게 역사를 창조하고 자기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새로운 시대, 주체시대”라고 그는 정의하였다. 이처럼 민중이 세계와 자기운명의 주인임을 자각하도록 의식화시켜 그들이 역사의 중심에 확고히 서서 세계를 자기의 요구와 이익에 맞게 개조변혁하고 역사발전을 주도해 나가도록 이끌어주는 시대의 지도사상이 바로 [김일성주의]라고 그는 강조하였다. 그는 선행시대와 구별되는 우리 시대의 특징을 명확히 규명하여 [김일성주의]가 우리 시대, 즉 자주시대의 요청을 반영하여 나온 새롭고 독창적인 혁명사상이며 시대를 이끌어 갈 지도사상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 설명하면, 김일성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주체사상이 <철학적 원리>와 <사회역사 원리>, <지도적 원칙>의 세 가지 구성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그는 과학적으로 해명하였다. 즉 주체사상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인식하고 개조할 수 있는 철학적 세계관을 주어야 하고 역사의 주체인 민중을 중심으로 사회역사관을 정립해야 하며 혁명의 주인인 민중이 혁명과 건설을 성과적으로 수행해 나가도록 지도원칙을 밝혀주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여기서 철학적 원리와 사회역사원리는 지도적 원칙의 원리적 전제로 되며 지도적 원칙은 철학적 원리와 사회역사원리를 혁명과 건설에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김일성주의는 마침내 김위원장에 의하여 사람, 즉 민중을 중심으로 그 내용이 전일적으로 체계화 되었다.


김위원장은 사상사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새롭게 제기하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를 독창적으로 밝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가장 발전된 사회적 존재로서 세계에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세계발전과 인간의 운명개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해설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인간중심의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사회역사에서 민중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기초적인 문제로 삼고 민중을 사회역사의 주체로 세운 민중중심의 사회역사관을 확립하였다. 즉 사회적 운동에는 자연의 운동과는 달리 주체가 있으며 사회적 운동은 주체의 주동적 작용과 역할에 의해 발생발전한다는 사회역사적 운동의 특징을 그는 독창적으로 해명하였다. 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은 민중의 자주성에 의해 규정되고 운동의 성격은 창조성에 의해 규정되며 운동의 추진력은 의식성, 즉 <자주적인 사상의식>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역사적 운동은 민중의 자주적, 창조적 운동이며 변혁운동에서 민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독창적인 원리가 밝혀짐으로써 김위원장에 의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과 성격, 추진력에 대한 과학적 해명이 제시되었다. 그가 이룩한 사상이론적 업적 가운데 특수한 업적은 <주체의 지도원칙>을 새롭게 밝힌 것이다.

특히 대중의 지도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기초하여 지도원칙을 전면적으로 새롭게 체계화하였다. 그는 민중이 아무리 역사의 주인이라고 하나 수령과 당의 지도를 받지 못하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변혁의 지도원칙은 결국 수령과 당의 영도라는 것을 독창적으로 천명하였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김정일위원장은 뛰어난 사상가였다. 그는 주석께서 창시한 주체사상을 지키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사상활동의 큰 목표로 내세우고 끊임없는 사색과 탐구로 주체사상을 심화 발전시켰다. 그는 지속적인 사색과 통찰력으로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의 혁명사상을 전면적으로 분석 총화하고 김주석이 창시한 주체사상의 독창성과 세계사적 지위를 명확히 밝혀주었다.



또한, 그는 조선혁명의 역사적 경험과 시대발전의 요구를 과학적으로 통찰하고 주석의 <선군사상>을 체계화하고 발전시켜 새로운 시대의 지도적 지침으로 발표하였다. 그는 새 시대, 선군시대의 도도한 역사적 흐름을 읽고 총대와 혁명, 군사와 사회주의 위업의 상호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데 기초하여 총대 위에 평화가 있고 사회주의 승리도 있다는 독특한 사상을 내놓았다. 그는 혁명은 총대에 의하여 개척되고 전진하며 완성된다는 <총대철학>을 정립하고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새로운 명제들로 선군혁명의 원리와 원칙들을 과학적으로 밝혀줌으로써 주석의 선군사상을 더욱 발전 풍부화시켰다.


둘째로, 김정일위원장은 위대한 사상가였을 뿐 아니라 조선혁명과 건설을 승리의 길로 이끌어온 뛰어난 정치가였다. 그는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으로 조선혁명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전략전술을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여러 난관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확고한 정치적 신념과 불굴의 의지로 혁명과 건설을 승리의 길로 전진시켰다. 또한, 그는 <사랑과 믿음의 정치철학>으로 인덕정치, 광폭정치를 시행하여 당과 민중의 혼연일체를 이룩하고 변혁의 주체를 더욱 튼튼히 하였으며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혁명과 건설에서 큰 성과를 이룩하였다.


셋째로, 김정일위원장은 선군정치로 코리아반도에서 전쟁을 막아내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수호한 위대한 장군이었다. 그는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조선노동당을 선군혁명의 전위대로 더욱 튼튼히 꾸리고 전투력을 비상히 강화하였으며 군대와 인민의 사상 일치를 실현하여 <군민 일치>를 새로운 높은 단계로 올려세웠다.

또한, 그는 온 사회에 군사를 중시하는 기풍을 세우고 자립적인 국방공업의 토대를 강화하여 이북을 침범할 수 없는 요새로 만들어 제국주의 연합세력들이 다시는 코리아반도를 침범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는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와 주석의 서거, 제국주의 연합세력의 이북에 대한 고립압살 공세와 심한 자연재해로 조국과 혁명 앞에 준엄한 시련이 닥쳐왔던 시련의 시기에 독창적인 선군정치로 주체사회주의를 수호하였으며 코리아반도를 그 어떤 강대국들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강력한 핵보유국, 인공위성 발사국으로 전변시켰다.


넷째로, 김정일위원장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헌신성으로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친 참된 애국, 애족, 애민자였다. 그에게 있어서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은 최대의 기쁨이었다. 그는 한평생 오로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현지지도를 강행했다. 강성국가 건설을 하루빨리 앞당기기 위하여 쉬임없이 노력하였다. 김위원장의 정력적인 현지지도 강행군길이 있었기에 고난의 행군, 강행군 시기와 같은 엄혹한 시련 속에서도 대규모적인 토지정리가 시행되었고 이북 경제가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의 높은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사회주의 문학 예술발전의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었다.


다섯째로, 김정일위원장은 통일된 부강조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려는 남과 북, 해외의 8천만 동포들의 소원을 현실로 꽃피우기 위하여 온 겨레를 자주와 민족대단결의 길로 이끌어왔으며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이 실현되는 6.15통일 시대를 열어놓았다.


여섯째로, 김정일위원장은 인류의 자주 위업 수행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자주와 정의의 기치 밑에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시대적 모범을 창조하여 인류의 자주 위업, 사회주의 위업을 줄기차게 전진시켜 왔다.

그는 1990년대 초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당하고 있던 시기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를 비롯한 논문들을 발표하여 사회주의는 민중의 요구이고 그 과학성, 진리성으로 하여 반드시 승리한다는 진리를 밝혀줌으로써 사회주의의 종말에 대하여 떠들던 제국주의자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리고 진보적 인류에게는 큰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혁명과 건설에서 언제나 <사상사업>을 앞세우고 <주체성>과 <민족성>을 구현하여 사회주의 건설의 시대적 모범을 창조함으로써 자주와 진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세계의 혁명적 민중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고무하고 힘있게 지지해 주었다.

이처럼 김정일위원장은 한평생 조국과 민족, 인민을 위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친 참된 애국자였다. 또한, 그는 격동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자주와 정의의 기치, 주체와 사회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인류에게는 희망과 신심을 안겨주고 제국주의 연합세력들에게는 공포를 주며 세계의 자주화 위업을 승리의 한길로 줄기차게 전진시켜온 위대한 사상가요, 정치가요, 장군이었다. 김정일위원장의 헌신적인 노고가 있었기에 지금 이북은 세계의 정치사를 정의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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