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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05 05:07
김일성-김정일주의 세계관의 정당성과 생활력
 글쓴이 : 최고관리자
 
김일성-김정일주의 세계관의 정당성과 생활력
-김일성주석 서거 25돌에 바치는 글-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백두산 밀영에서 김일성 빨지산 부대원들은 며칠씩 굶는 경우가 허다했다. 산밑으로 내려가 식량을 구해와야 하는데 일본군인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럴 때 일부 용감한 젊은 빨치산 대원들이 몰래 산을 내려가 일본병사들의 눈을 피해 한푸대의 쌀을 구해가지고 돌아와 전 대원들을 살려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들 중에는 과거에 소작농을 하던 무식한 소년들로 김일성부대를 찾아온 나이 어린 부대원들도 있었다. 또한, 대원들은 오랫동안 소금을 먹지 못해 얼굴이 부어오르고 많은 병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 한 대원이 몰래 마을로 내려가 일본병사들을 따돌리고 소금 한자루를 가지고 올라왔다. 그는 과거에 평양고등학교를 다니던 엘리트 학생이었다. 이들이 부대를 떠나 산밑으로 내려가 돌아오지 않고 일본군에 투항하여 밀고 했다면 부대 전체가 어려움에 처했을 수도 있었다. 김일성부대는 때로 일본군대들과 싸워 적들에게서 총을 뺏어오곤 하였다.

이러한 생사를 넘나드는 오랜 기간의 빨치산투쟁을 통하여 김일성주석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믿을 것은 오직 사람밖에 없던 깊은 산 속에서 투쟁하는 가운데 부대원 하나하나가 나이, 피부색갈, 학력, 재산의 유무에 상관없이 역사의 주인이고 참으로 귀중한 존재라고 김주석은 사색하곤 했다.

< 철학적 원리>란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하는 <세계관>의 기초에 놓여 있는 근본이치를 말한다. <철학적 원리>가 어떠한가에 따라 해당 사상의 <철학적 세계관>이 결정되며 사상의 <혁명성>, <과학성>이 좌우된다. 사상의 위대성을 결정하는 <철학적 원리>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철학의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해답을 주는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이다. 그것은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혁명사상만이 사람이 사는 세계의 본질과 그 변화발전의 합법칙성을 명확히 밝히고 인민대중의 <운명개척>을 위한 가장 정확한 투쟁방법을 제시하는 혁명사상으로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바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지위>를 나타내고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표현한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그에 해답을 준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이다. 주체사상은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를 기초로 하고 있음으로 하여 가장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세계관을 밝히게 되었으며 우리 시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되었다.

그러면 김일성-김정일주의의 기초인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인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첫째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알아보자.

김주석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의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자주적인 존재이므로 주위세계에 예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면서 삽니다.”([김일성 저작집] 제36권, 280페이지)

위에서 김주석이 지적한 바와 같이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사람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는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들은 세상만물의 창조자, 지배자가<신>, <하느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 이외의 다른 모든 생명물질들도 세계의 지배자로 될 수 없다. 세계에 존재하는 무생명 물질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사람 이외의 다른 모든 생명물질들은 자연에 의하여 전적으로 지배되고 있다. 사람은 주위 세계에 종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면서 자기에게 복무하도록 만들어나가는 유일한 <자주적 존재>이다. 사람들은 짐승들을 길들이고 있으며 홍수와 가뭄 피해도 없애고 있다. 현시기에 와서 사람들은 신비한 세계로만 알던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며 달나라 여행을 하고 우주공장, 우주발전소, 우주도시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람은 사회제도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개조 변혁해나가고 있다. 인간을 신분적 예속에 몰아넣고 착취하던 봉건제도가 자본주의제도로, 사람들을 돈, 자본의 노예로 만드는 자본주의 제도가 사회주의 제도로 교체되어나가는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이 이것을 잘 실증해 주고 있다. 사람의 활동을 떠난 사회의 형성과 변화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람은 주위 세계에 종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주위 세계를 지배하면서 사는 존재이므로 세계의 유일한 주인으로 된다.

사람은 또한 자기 운명의 주인이다. 운명문제는 생사존망과 생활처지에 관한 문제이다. 사람의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와 사람이 어떤 사회적 처지에 놓이게 되고 어떤 생활을 누리게 되는가 하는 것은 종교가 주장하는 것치럼 신에 의하여 미리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 사람의 운명을 책임지며 그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 어떤 존재도 없다. 도올 김용옥선생은 어떤 “존재”로서의 신, 하느님이라는 것은 더 이상 ‘No Thank You!’”라고 말하면서 아직도 저 하늘 어딘가 존재하는 <인격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느냐며 반문한다. 도올선생은 [도마복음]을 강의하면서 마지막 83강에서 “나라(하늘나라)가 너희 속에 있는데 어디 다른 데서 나라(하늘나라)를 찾느냐”고 예수가 도우(제자)들에게 꾸짖는 말로 결론을 내면서 예수도 자기(인간) 밖의 어떤 다른 신(여호와)을 믿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람의 생활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것만큼 사람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는가,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며 어떤 생활을 누리게 되는가 하는 것은 자연과 사회를 얼마나 자기를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드는가에 따라서 좌우된다. 사람의 운명의 지배자는 인간 밖의 어떤 신이 아니라 오직 사람 자신이다. 사람은 제손으로만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수 있으며 또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결코 태어날 때 작은 주먹에 미리 정해진 운명을 쥐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며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신비로운 신에 이끌려가는 존재도 아니다. 사람은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있으며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도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다음으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김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창조적인 존재이므로 주위 세계에 순응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하면서 삽니다.”([김일성 저작집] 제36권, 280~281페이지)

<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변혁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세계를 개조 변혁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세계를 개조 변혁하는 데 작용하는 요인들 가운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데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용한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짓는 데서 기후조건이나 토양조건, 기계수단 등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된다.

그러나 그러한 객관적 조건들과 물질적 수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사업이 저절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 조건을 주동적으로 마련하고 유리하게 이용하며 생산도구와 무기를 만들고 다루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어떻게 활동하는가에 따라서 객관적 조건을 올바로 이용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것이 좌우되며 또 위력한 도구와 무기가 생산되는가 안되는가, 그것이 효과적으로 이용되는가 못되는가가 결정된다.

지난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조선 인민들이 남들 같으면 영영 쓰러져 다시 일어서지 못할 엄혹한 난관과 시련에 처하여 있으면서도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인<혁명적 군인정신>으로 혁명과 건설에서 사람들을 놀래게 하는 기적과 혁신을 일으킨 것도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력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 주고 있다.

사람은 또한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람의 운명은 세계를 개조 변혁해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개척된다. 사람은 세계의 개조 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람의 운명은 사람 자신이 세계의 개조 변혁을 어떻게 해나가는가 하는데 따라 좌우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이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철학적 원리>에는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인간의 운명개척의 근본방도가 명시되어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은 세계의 주인으로서 특별한 <지위>와 <역할>을 갖게 되는가? 그것은 사람이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하여 정확히 설명하는 것은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밝히는 데서 출발점으로 된다. 지난 시기의 모든 철학들은 사람에 관한 문제를 대부분 사회적 관계를 떠나 <순수 인간>에 대하여서만 논의하였다. 사람을 주로 <정신적인 존재>로 보거나 <자연적, 생물학적 존재>로 본 것이 사람에 대한 지난 시기의 견해였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밝혔다. 여기서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말은 사람이 단순히 <사회적 관계>에 의하여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주동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생활하며 그것을 개조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김일성-김정일주의에 의하여 밝혀진 사람의 본질적 특성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다. 김일성-김정일주의에 의하여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해명됨으로써 사람중심의<철학적 원리>를 밝힐 수 있는 이론적 기초가 마련되었다.

그러면 김일성-김정일주의에 의하여 해명된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본질적 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과 그것이 사회적 속성이라는 데 대하여 설명해 보자.

첫째로, 사람의 본질적 특성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다.

김정일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며 그것으로 하여 사람은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누려나가는 것입니다.”([김정일 선집] 제9권, 309페지)

< 자주성>은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사람은 자주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여 자연의 구속과 사회의 예속을 그대로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반대한다. 온갖 예속과 구속을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과 사회를 자기에게 복무하도록 만든다. 자주성은 사람이 사람으로 되게 만드는 근본적 속성, 사람의 제일 생명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이 생명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말한다.

사람은 <육체적 생명>과 함께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진다. 육체적 생명이 생명유기체로서의 사람의 생명이라면 <사회정치적 생명>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생명이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이 생명으로 되는 것은 자주성을 가져야 사람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존엄을 지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회정치적으로 자주성을 잃고 남에게 예속된다면 사람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짐승처럼 취급당한다. 사회정치적으로 남에게 예속된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없고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없으므로 비록 육체적 생명은 붙어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인간으로서는 죽은 몸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남의 노예가 되어서 목숨이나 부지하는 것보다 자유를 위하여 싸우다 죽는 것을 더 영예로운 것으로, 고귀한 삶으로 여기는 것이다.

< 창조성>은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사회적인간의 속성이다. 사람은 창조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여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간다. 동물들 가운데는 다람쥐와 같이 먹이를 날라다 저장하거나 까치처럼 자기 둥지를 트는 것과 같이 신기할 정도로 생존활동을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목적의식적으로가 아니라 본능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사람은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살려는 요구로부터 출발하여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뚜렷한 목표와 방향을 세우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의도적으로 벌인다.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간다는 데 동물과 구별되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 있다.

사람은 또한 낡은 것을 개조하여 새 것을 만들어낸다. 동물들의 먹이를 구하는 방법, 둥지를 트는 방법 등은 오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노동수단과 방법을 끊임없이 개조하고 발전시키며 자연과 사회를 자기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개변시켜나간다.

다음으로,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사람이 의식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생물학적 본능의 요구를 통제한다는 하나의 사실만 놓고 봐도 잘 알 수 있다. 물론 사람도 생물학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 만큼 사람의 활동에도 본능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있다. 가령 먹고 싶다든가 자고 싶다든가 하는 것은 생물학적 본능의 요구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서 이러한 본능의 요구는 자기의 건강과 사회활동의 특성에 맞게 조절 통제된다.

특히 사람은 의식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삶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배고픔도 참고 몰려드는 졸음도 이겨낸다. 자신의 모든 활동을 조절 통제할 줄 아는 것이 바로 동물과 다른 사람의 특성이다. 사람은 의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여 그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이 자기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하는 것을 판단한 기초 위에서 모든 활동을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벌여나간다.

모든 활동을 아무런 착상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서 구상과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나간다. 사람은 의식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업과 생활에서 강한 의지와 투쟁력을 발휘한다. 사람은 의식성으로 하여 세계와 그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을 파악하며 자연과 사회를 자기의 요구에 맞게 개조하고 발전시켜나간다. 의식성에 의하여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이 담보되며 그 합목적적인 인식활동, 실천활동이 보장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고 힘있는 존재로 되며 세계를 숙명적으로가 아니라 혁명적으로,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하고 세계를 맹목적으로가 아니라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하게 된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람은 곧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이며 유일한 개조자이다.

또한, 사람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사람이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람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사회역사적 과정에 형성되고 발전되는 사회적 속성이다. 위에서 설명한 사람의 본질적 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람의 <발전된 유기체>를 떠나서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지만 사람의 <생물학적 특성> 그 자체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낳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살지 못하면 아무리 발전된 유기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지닐 수 없다.

사람은 사회를 이루고 생활해나가는 과정에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며 자기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갈 줄도 알게 된다. 또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의식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람들의 사회생활을 통하여 형성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의 사회생활 과정에 대를 이어 전해지면서 역사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람은 사회적으로만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며 자기의 목적을 실현해 나간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오직 사회적 존재인 사람에게만 고유한 것이다.

이와 같이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철학적 원리>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해명에 기초하여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와 <역할>을 과학적으로 밝혀주는 독창적인 철학적 원리이다.

위에 해설한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처음으로<사람중심의 세계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김일성-김정일주의 세계관>은 우리 시대의 가장 올바른 세계관이다. 역사가 전진함에 따라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은 더욱 강화되고 그들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투쟁에 의하여 지배되는 세계의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 와서 인민대중은 세계의 참다운 주인으로 등장하였으며 그들의 투쟁에 의하여 세계는 더욱 더 인민대중에게 복무하는 세계로 전변되고 있다.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이 비상히 강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김일성-김정일주의 세계관>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더욱 힘있게 확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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