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17 13:31
통일전선을 위한 위대한 생애
 글쓴이 : 최고관리자
 
통일전선을 위한 위대한 생애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김일성주석님의 일생은 <통일전선운동>을 위한 한생이었다고 말해도 관언이 아닐 것이다. 그 자신은 어려서부터 공산주의자가 되었지만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민족주의자들, 종교인들, 종파주의자들, 사대주의자들, 등과 함께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하여 공동전선 활동을 전개하셨다.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들끼리 파쟁싸움이나 벌리고 민족주의자들도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리며 단결하지 못하고 또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상호간에도 연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찌 일본제국주의라는 공동의 강적과 싸울 수 있겠느냐는 것이 김주석님의 일관된 의문이었다.


김일성주석님은 세상에 애국 애족 애민 사상처럼 위대하고 순결하고 신성한 감정은 없다고 믿으셨다. <민족단합정신>은 애국 애족 애민의 감정가운데서도 그 “정수를 이루는 최고의 넋”이라고 생각하셨다. 조선청년공산주의자들은 민족해방을 위해 출범한 그 첫 기슭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나 <민족단합>의 이념을 변함없이 소중하게 간직해오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김일성주석님을 비롯한 조선청년공산주의자들은 항일혁명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모든 반일애국세력을 하나의 강력한 정치적 역량으로 묶어세울데 대한 노선을 내세우고 그 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몇년동안 국내와 만주지방에서 피어린 투쟁을 꾸준히 벌렸다. 그 과정에 그들은 많은 군중을 묶어세웠다. 그 군중들 속에는 애국적인 종교인도 있고 상공인도 있고 하급관리들도 있고 심지어는 애국적인 지주들도 있었다. 그런데 좌경모험주의자들은 그 당시의 실정에 맞지 않는 <쏘비에트정권>을 유격구에 받아들여 난관을 조성하였다.


김일성주석님은 당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업을 수행해야 할 동만지방의 유격구들에서 <쏘비에트>가 실정에 맞지 않는 정권형태라는것이 생활적으로 증시된 조건에서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은 결단을 내려 정권형태를 바꾸고 인민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실시하여 혼란상태에 빠진 시국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김주석님은 죽음을 내놓고 항일혁명을 해온 조선청년공산주의자들이 단지 어떻게 하면 각계각층 인민의 이익을 옹호할 수 있으며 인민의 지지와 환영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데 기본을 두고 현 단계에서 혁명의 성격이 무엇인가 하는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될 것이라고 역설하셨다.


그의 말을 듣고 조선청년공산주의자들은 통일전선적 정부를 세우되 노농동맹에 기초한 통일전선적인 <인민혁명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다들 동의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조선의 역사책들에서 <인민혁명정부 노선>이라고 불리워지고있는 정권건설 노선이다.

조선청년공산주의자들이 조선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만지방에 적합한 정권형태로 <쏘비에트정권>이 아니라 <인민혁명정부>를 선택한 것은 그것이 당시 반제반봉건민주주의를 목적으로 하는 조선혁명의 성격에도 알맞고 인민의 요구에도 부합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정권형태의 기준을 인민의 요구에서 찾고 인민의 이익을 얼마나 옹호고수하며 철저히 대변하는가 하는데서 찾았다. 동만의 유격구 인민들은 <인민혁명정부 노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였다.


해방후 조선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 농민, 상공인들, 지식인들을 총망라시켜 사회주의정권이 아니라 인민혁명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1948년 9월9일 탄생시켰다. 조선은 지금도 이남정권과 사상, 이념, 체제를 넘어서서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하자고 <통일전선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김일성주석님은 1994년 7월7일 2주 후에 있을 이남의 김영삼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의논할 문서에 서명하시고 다음 날 7월8일 서거하셨다. 실로 그의 전생애는 <민족대단결>을 위한 위대한 생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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