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17 01:04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계승
 글쓴이 : 최고관리자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계승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항일혁명투쟁에서 조선유격대원들은 영활한 전법과 신출귀몰한 묘술의 힘에다 가장 중요한 <동지적 단결>과 <혁명적 의리>의 힘으로 적들을 타승하였다. 그리고 적들이 폭압에 미쳐날뛸수록 인민들과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였고 그들 내부를 사상적으로 와해하려고 할수록 대오의 <사상의지적 통일>과 <도덕의리적 단합>을 더욱 굳건히 하였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의리>는 “인간본연의 도덕적 관념”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즉 <의리>란 사람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이다. 낡은 사회에서도 <의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계급적 갈등이 심한 자본주의 사회와 민족적 갈등이 존재하는 식민지사회에서는 진정한 의리란 찾아보기 힘들다. 조선 항일유격대원들은 혁명투쟁과정에서 낡은 사회에서 물려받은 불평등한 인간관계와 도덕적 규범을 타파하고 새로운 공산주의적 인간관계와 도덕적 규범을 창조하였으며 그것을 후대들에게 하나의 재부로 물려주었다. 항일유격대에서 상하관계, 동지관계, 군민관계를 지배한 것은 “사랑과 믿음에 기초한 공산주의적 의리”였다고 김일성주석은 평가하였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법들이 있지만 인간의 여러 실천활동을 법 하나만으로 통제하고 조종할 수 없다는 것이 김주석의 판단이었다. 사람의 사고나 행동가운데는 법으로 다스릴 수 없는 그런 분야도 많이 있다. “사랑”이나 “우정”을 어찌 법으로 다스릴수 있겠는가고 김주석은 반문하였다. 법이 못하는 일을 법을 대신해서 해내는것이 바로 “의리”와 “도덕”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조선청년공산주의자들은 동지를 얻는 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였고 “동지적 의리와 단합”을 강화하고 인민들 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과의 “혈연적 연계”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혁명을 계속 심화시키었다. “동지애”와 “의리”는 그들의 혁명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생명선”이었다. 그들이 걸어온 수십성상의 영광스러운 투쟁의 길은 “동지애와 동지적 의리의 발전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김주석은 평가했다.


조선청년공산주의자들은 세속적인 입신출세를 위해 모인 오합지졸이 아니라 조국의 자주와 해방이라는 하나의 지향과 목적을 가지고 뭉쳐진 “혁명가들의 집단”이었다. 사상과 이념의 공통성은 그들로 하여금 처음부터 생사를 같이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 속에는 다른 배신적 행동을 할 겨를이 없었다.

“혁명적 동지애”와 “동지적 의리”를 중시하는 것은 <집단주의>를 생명으로 하는 항일혁명유격대원들의 존재방식인 동시에 본성적 요구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한자루의 총, 한포대의 쌀, 한컬레의 신발을 구하기 위해서도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았다. 그 과정에 그들은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는 혁명적 신념과 함께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가장 고상한 <공산주의적 도덕>을 창조하였으며 “단결이 곧 승리”라는 하나의 진리를 도출하게 되었다고 김주석은 회고하였다.


항일혁명은 인류가 아직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혁명이었다. 그것은 간고성과 치열성에서 그 어느 시대의 혁명과도 대비할 수 없는 험난한 혁명이었다. 조선항일유격대원들은 난관이 겹쌓이고 시련이 중첩될수록 “동지적 단결”의 구호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동지애의 힘”으로 그 모든 난관과 시련을 뚫고나갔다. 그들은 그들을 고립압살하려는 적들의 전략에 <혁명적 의리>와 <단결의 전략>으로 맞서나갔다.


항일혁명시절의 <의리>가운데서 특출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영도자와 인민대중사이의 의리였다. 조선혁명유격대원들은 영도자와 인민대중의 혼연일체와 도덕의리적 결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도자와 인민대중의 상호관계는 한마디로 <일심동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영도자는 인민대중을 위해 복무하고 인민대중은 영도자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바로 영도자와 인민대중사이에 흐르는 <조선식 공산주의적 의리>라고 김주석은 생각하였다.


새세대청년공산주의자들은 김일성주석을 통일단결의 중심에 내세우고 영도자와 전사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민족의 운명개척을 위해 투신하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였다. 새 세대청년공산주의자들과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니고 있던 공산주의적 의리가운데서 핵을 이룬것이 바로 자기 지도자, 자기 최고사령관에 대한 충실성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새세대청년공산주의자들은 <파쟁>이라는 것도 몰랐고 <권력다툼>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들은 일단 김일성주석으로 영도의 중심을 내세운 다음에는 곁눈을 팔지 않았다. 그리고 영도자인 김일성주석에게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였다. 여기에 바로 그들이 지니고 있던 공산주의적 의리의 순결성이 있다.


김혁, 차광수, 최창걸, 등 새세대청년공산주의자들을 비롯하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시기 김주석과 함께 전장에서 싸운 수많은 항일유격대원들은 하나같이 순결한 의리의 소유자, 고상하고 아름다운 도덕의 창조자들이었다고 김주석은 회고하였다.



“항일혁명투사들의 의리”를 두고 논할 때면 수많은 동지들이 떠오르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김주석과 함께 50년 동안 항일전쟁도 하였고 새 조국건설도 하였으며 반미전쟁도 하였고 사회주의건설도 함께한 김일동지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고 김주석은 고백하였다. 김일동지는 가식이 없고 고지식했으며 어떤 풍파가 불어도 드놀지 않고 한마음으로 충실하게 일하였다고 김주석은 회고하였다. 김일동지는 한평생 조건타발이라는것을 몰랐다고 한다. 그저 시종일관 입을 꾹 다물고 수걱수걱 일만 하였다고 김주석은 김일동지를 회상하였다. 김일동지는 김주석의 명령, 지시에 대한 집행을 상급 앞에 지닌 하급의 의무로만 간주한 것이 아니라 영도자에 대한 “전사의 의리”로 여기는 “진짜배기 혁명가”였다고 김주석은 평가했다. 그는 무슨 일이건 “의리감”으로 집행했기때문에 임무수행에서 큰 파동이 없었다고 했다.


김일동지는 어떤 경우에나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동지들을 먼저 생각하고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당과 혁명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였다고 김주석은 회고하였다. 그는 오랜 기간 당과 국가의 높은 지위에서 일하였지만 자기에게 “특전, 특혜, 특대”가 차례지는 것을 전혀 바라지 않았다. 아래사람들이 자기를 특대하려고 하면 그것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일동지는 해방후에도 항일혁명시절처럼 김일성주석을 잘 도와주고 받들었다. 그는 김주석이 바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면 진일 마른일을 가리지 않았다고 했다. 당사업이면 당사업, 군건설이면 군건설, 경제지도면 경제지도 초소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복잡한 국사에 묵묵히 몸을 적시었다고 김주석은 기억했다.


김일동지는 중병에 걸려 지팽이를 짚고 다니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에도 집무실이나 생산현장을 떠나지 않고 당과 혁명을 위해 한가지 일이라도 더 많이 해놓으려고 온갖 정열을 다 바치었다. 그러다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 임종 사흘전까지 집무실에서 일을 했고 소속 당세포에서 당생활총화를 하였으며 당중앙위원회의 책임일군을 찾아 김정일동지를 잘 모셔달라는 부탁을 하였다고 한다. 그가 한평생 김주석을 충심으로 따르고 받들어온 것처럼 김주석도 한평생 그를 친혈육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었다고 김주석은 회고록에 쓰고 있다.


김일동지처럼 항일혁명투사들은 자기 지도자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데서 뿐 아니라 혁명동지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데서도 최상의 경지를 개척하였다. “사랑에는 사랑으로 보답하고 믿음에는 믿음으로 대답하며 은혜는 은혜로 갚는 것이 항일유격대원들의 의리”였다고 김주석은 회고하였다.


다음으로 김주석은 의리의 화신으로서 매사에 이악하고 경우가 밝고 원칙성이 강하면서도 인정미가 있던 키가 작달막한 황순희동지를 회고하였다. 그녀는 키가 너무 작아 부대의 짐이 되었지만 곧 모든 사람들의 총애를 받는 혁명군의 꽃으로 되었다. 황순희가 그처럼 체소한 몸으로 끝까지 혁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신념이 강하고 의리”가 강했기 때문이었다고 김주석은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김주석은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를 생각하며 이을설동지를 회상했다. 고난의 행군때 장백에서 갓 입대한 신입대원이 밤에 우등불곁에서 자다가 군복을 태운 일이 있었다. 동지애가 강하였던 이을설동지는 신입대원이 당하는 고통을 보다 못해 어느날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군복저고리를 벗어들고 그 대원을 찾아갔다. 이을설동지는 그의 몸에서 불에 탄 옷을 강제로 벗기고 그 대신 그에게 자기의 군복을 입혔다. 전우들은 모두 이을설동지가 그 겨울을 견뎌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경위중대에서 나이도 어리고 체질도 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주지방의 추위가 참으로 혹독하였다. 추운 날에는 머리카락에 성에가 끼기 일쑤이다. 성에가 낀 머리카락들은 손가락으로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고드름처럼 쉽게 부서져나간다. 이런 강추위 속에서 불에 타서 구멍이 난 여름옷을 대충 기워입고 여러날 행군을 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을설은 춥다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는 행군을 할 때마다 앞장에서 생눈을 헤치였다. 숙영지에서는 언제나 그가 선참으로 나무를 해오고 천막을 쳤다.


이을설동지의 강인성과 동지적 의리는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생활 속에서 민족이 당하는 수난과 고통을 체험하는 과정을 통하여 착취받고 압박받는 인간들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고 인민을 사랑하고 동지들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김주석은 판단했다. 김주석은 북대정자회의에서 <고난의 행군>을 총화할 때 이을설동지를 <동지애>의 모범으로 내세우고 그의 품성과 <동지적 의리>를 평가해주었다.


조선인민혁명군이 강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고 강했던 것은 “의리로 뭉쳐진 집단”이었기 때문이라고 김주석은 평가하였다. 그들의 단결이 <도덕과 의리>에 바탕을 두지 않고 순수 사상의지의 공통성만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면 그들은 그처럼 강할 수 없었을것이라고 김주석은 보았다. 정규군의 지원도 없고 국가적 후방도 없는 최악의 상태에서 일본제국주의와 같은 강적을 상대로 하는 장기간의 혁명전쟁에서 조선인민유격대원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병력이 많거나 무장이 우월해서가 아니었다. 수백만의 정규군을 가지고 있는 적에 비교해볼 때 그들의 병력은 수적으로 매우 극소수였다. 적아의 무장은 대비할바도 못되었다. 오로지 “충성과 의리”로 결합된 “사상의지적 단합”이 있어 그들은 강적을 타승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고 김주석은 믿었다.


네번째로 김주석은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의리의 화신으로써 임춘추동지를 회상하였다.임춘추동지는 당과 수령에 대한 의리를 높은 경지에서 구현한 투사였다고 김주석은 추억하였다. 임춘추동지는 독학으로 의학을 공부하여 18살부터 면허증을 가진 의사로 의료활동을 하다가 유격구로 들어와 군의로 임명되었다. 김주석은 임춘추동지가 “지식”을 밑천으로 하여 군의활동도 하고 당건설활동도 하고 저술활동도 잘 하였다고 회고하였다.


임춘추동지는 전투와 행군, 치료사업으로 바삐 보내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시간을 아껴가며 매일같이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역사”를 짬짬이 기록하였다. 종이가 바닥이 나면 봇나무껍질을 얻어서라도 거기에 조선인민혁명군의 투쟁일지를 정리해놓군 하였다. 그 일지가 해방후 그가 쓴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하여]의 기초자료로 되었다.


임춘추동지가 이 책을 저술함으로 항일혁명에 참가한 모든 공산주의자들과 애국적 인민들 앞에 지닌 의리와 의무를 지키려고 하였다. 그는 자기자신을 소개하거나 그 무슨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기 위해서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조선인민의 만년대계의 재부로 되는 <혁명전통>을 후대들이 더 잘 계승하고 완성해나가도록 하려는 고상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썼다고 김주석은 평가했다.


임춘추동지는 조선노동당의 혁명전통과 관련된 많은 책들과 교양자료들을 써냈다. 그리고 많은 자료들을 고증하고 체계화하여 당역사에 빛나는 위훈을 세웠다. 그는 청년공산주의자들을 원형으로 하는 [청년전위]라는 다부작 장편소설까지 창작하였다.


조선노동당은 지금 임춘추동지를 조선청년공산주의자들이 개척하고 승리에로 이끌어온 항일전의 빛나는 혁명역사에 대한 권위있는 증견자, 힘있는 보증자로 평가하고 있다. 사실상 임춘추동지는 어려운 항일혁명을 하지 않고 의술만으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지만 그는 사선의 고비를 수백번이나 넘으면서도 혁명의 길에서 한번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자기 수령과 동지들 앞에 지닌 의리를 한번도 저버리지 않았다.


임춘추동지는 용정감옥에 갇혔을 때 자기가 죽어도 혁명은 승리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자기 개인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혁명조직과 동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보호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야수적인 고문을 이겨냈다. 그는 참으로 “진짜혁명가”였다고 김주석은 평가하였다.


임춘추동지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얼마동안 지방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보건성에서 소집하는 회의에 참가하려고 평양으로 출장을 올 때마다 시내의 여관에 머물지 않고 모란봉에 올라가 투사들의 묘소옆 잔디밭에 백포를 펴고 잠을 자군 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모란봉에는 김책, 안길, 최춘국, 김정숙 등의 묘소가 있었다. 그는 한지에서 전후좌우에 전우들의 무덤이 있는 산등성이에서 한장의 백포에 몸을 맡기고 노숙하면서 무덤 속의 전우들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김주석은 그 사연을 듣고 임춘추동지야말로 “의리가 있는 참사람이며 참투사”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바로 “항일유격대식 의리”라고 김주석은 판단했다. 세상에는 인간의 의리와 사랑에 대한 미담들이 수없이 많지만 항일혁명투사들이 창조한 것보다 더 “숭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의리”를 그는 모른다고 회고록에 쓰고 있다.


이러한 숭고하고 진실되고 아름다운 의리는 대를 이어 계승되고 있다. 김정일위원장은 지난날 김일성주석을 모시고 충성을 다한 항일혁명투사들, 그 시기 주석의 혁명활동을 도와준 연고자들과 그 유가족들과 후손들을 귀중히 여기고 은정을 베푸는 것을 자신의 숭고한 의리로 여기었다. 김주석은 김정일위원장이 지닌 고결한 의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김정일동지는 의리가 깊습니다. 그는 한번 뜻을 나누고 손을 잡은 사람은 끝까지 책임지는 특유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김정일위원장은 국가적인 기념행사나 경축연회에도 노혁명가들을 빠짐없이 참가시키어 맨 앞자리에 내세워주고 명절마다 귀중한 선물을 보내주며 신년이 되면 축하장도 꼭꼭 보내는 등 혁명선배들에 대한 예우를 극진히 하였다. 그의 고결한 의리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살고 있는 혁명열사의 유가족들, 김주석의 혁명활동을 도와준 연고자들을 일일히 찾아내어 열사들에 대한 의리를 그들의 자손들에게 지켜갔다.


혁명선배들에 대한 김정일위원장의 이러한 숭고한 의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분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게하였다.


이러한 선대 수령님들의 고결한 의리는 지금 조선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국무위원장에 의해 잘 계승되고 있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은 연설할 때마다 수령과 당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적 복무정신, 투철한 혁명적 원칙성, 고지식한 품성을 지녔던 항일혁명투사들과 50년대에 김주석의 영도따라 제국주의연합세력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켜낸 노병들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그들의 업적을 주체혁명위업의 전진과 더불어 길이 빛낼 것이라고 다짐하곤 하였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은 항일혁명투사들과 조국해방전쟁에 헌신한 노병들이야말로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인 참다운 <동지애>의 초석을 굳건히 다지고 인민군대를 필승불패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는데 일생을 다 바친 참된 혁명가들이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혁명의 길에서 생사운명을 같이한 전우들에 대한 <숭고한 도덕의리>는 혁명을 추동하고 전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 앞으로 자신과 당은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의 위력으로 주체혁명위업의 최후승리를 기필코 이룩할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바친 삶이 가장 값높게 빛나게되는 것은 그 삶을 귀중히 여기고 내세워주는 인민의 참다운 영도자, 인민에 대한 숭고한 사랑과 의리를 지닌 최고지도자의 품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품 속에서 조국과 인민,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친 수많은 사람들이 시대와 역사, 인민의 기억 속에 영생하는 삶을 누리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숭고한 의리>의 세계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친 항일혁명투사들과 수많은 혁명동지들, 통일애국인사들의 공적과 위훈은 길이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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