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23 00:30
혁명가의 신념과 의지
 글쓴이 : 최고관리자
 
혁명가의 신념과 의지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항일혁명에 참여한 유격대원들이나 애국운동가들은 항상 죽움과 투옥을 당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적들은 <민생단사건>과 <혜산사건>같은 없는 사건마저 만들어내어 항일운동가들을 잡아다 처형하였다. 일제에 잡혀 옥중에서 고문치사를 당한 독립투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김일성주석은 <민생단 사건>과 <혜산사건>, 등을 겪으면서 혁명가들의 <신념과 의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두 사건은 매개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신념과 의지의 강도를 검증하는 일대 시련이었다. 말하자면, 이 사건들은 “진짜 혁명가”와 “가짜 혁명가”를 가르는 하나의 엄혹한 검열과정이었다고 김주석은 보았다. 신념과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혁명가로서의 절개를 지켜 원수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반대로 신념과 의지가 박약한 사람들은 혁명가로서의 존엄을 버리고 배신과 굴종의 길에 떨어지고 말았다. <신념과 의지>는 혁명가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초적 자질”로서 이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혁명가”라고 말할 수 없다고 김주석은 생각했다.


1937년에 발생한 <혜산사건> 초기에 고문에 못이겨 적들에게 아군의 비밀을 고스란히 불어버린 배신자들 때문에 장백일대의 혁명조직들이 노출되어 파괴되었고 권영벽, 이제순, 박인진, 서응진, 박록금 등 수많은 지도핵심들과 조직성원들을 잃는 참변을 당하였다. 배신자들은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조직의 비밀을 지키고 혁명의 이익을 고수해야겠다는 철석같은 각오와 불굴의 투쟁정신이 부족하였다.


참된 인간의 징표를 논할 때 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항일유격대원들은 그가 무슨 사상과 신념을 어떻게 지니고 있는가에 대하여 응당하게 중시했다. 왜냐하면 사상과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삶의 목표가 뚜렷하고 그 목표를 점령하기 위한 노력에 성실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김주석은 혁명가들을 육성하는데서 모든 사람들이 공산주의적인 신념과 의지를 소유하도록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었다. 김주석은 <신념과 의지>를 혁명가의 중요한 징표로 보고 그 교양에 막대한 노력과 정력을 기울였다. 그것은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간해방”의 기치아래 진행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과정이 인류가 수행하는 모든 혁명가운데서 가장 간고하고 장기적인 변혁운동으로 되기 때문이라고 김주석은 생각했다. 강철같은 <신념과 의지>가 없이는 자연과 사회의 온갖 구속과 도전으로부터 인간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어려운 변혁운동을 끝까지 승리에로 이끌어나갈 수 없다는 것이 김주석의 판단이었다.


< 신념과 의지>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환경과 조건에 따라 더욱 굳건해질 수도 있으며 약화될 수도 있고 변질될 수도 있는 것이 신념과 의지이다. 혁명가의 신념과 의지에 변질이 생길 때 그 혁명은 헤아릴 수 없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하여 김주석은 <신념과 의지 교양>을 공산주의적 인간육성의 필수적인 과정으로 보았다. 신념과 의지의 연마는 혁명적인 조직생활과 실천활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부단한 교양과 자체 수양과정을 거쳐야 견고하고 확실한 것으로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경과하지 않은 신념이나 의지는 “사상누각”과 같다고 김주석은 보았다. 혜산경찰서의 취조실에서 혁명가의 신념을 지켜내지 못한 배신자들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들은 혁명적인 조직생활과 실천과정을 거쳐 심신을 충분히 단련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사상의식은 폭풍 속에서 연마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항일혁명의 전성기에 입대하여 승리하는 싸움만을 체험한 사람들이었다. 혁명이 상승단계에 있을 때에는 그 흐름을 타고 대열 내에 사상적으로 견실하지 못한 우연분자들이 끼여들 수 있다는 것이 김주석의 판단이었다.


김일성주석은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서 제일 먼저 마동희동지를 회고하였다. 마동희동지는 조직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혀를 끊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자기 혀를 스스로 끊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한 각오는 살아서 역적으로 되는 것보다 죽어서 충신이 되기를 바라는 “참인간들”만이 결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김주석은 생각했다. 사람이 일단 죽음을 각오하게 되면 무슨 일이든지 다할 수 있다. 마동희동지의 “용기와 희생성”은 신념과 의지가 강한데서 나온 것이었다고 김주석은 보았다. 그 용기와 희생성은 어떤 고문이나 위협으로써도 제거할 수 없는 무쇠같은 신념과 의지의 발현이었다. 마동희동지는 자기가 비밀을 지키면 조직은 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자기가 죽어도 혁명은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마동희동지를 신념이 강한 인간으로 만들어준 것은 “혁명실천”이었다고 김주석은 보았다. 마동희동지는 백암지방에서 살 때 반일회도 조직해보았고 교편을 잡고 화전민의 자식들에게 애국주의 교양도 해보았다. 인민혁명군에 입대한 후에는 구대원들과 함께 간고한 무송원정도 해보고 경위중대의 학습강사로서 대원들의 정치, 문화적 자질을 높이기 위한 계몽사업도 해보았다. 그 과정에 사람이 망국노가 되면 상가집 개만도 못한 신세가 되며 민족이 살아나갈 길은 투쟁에 있다는 것, 혁명을 해야 살길이 열리고 혁명을 하지 않으면 자자손손 마소보다도 못한 노예살이를 하게 된다는 것을 하나의 진리로 받아들이었고 그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만들었다. 마동희동지는 불공정한 것, 몰염치한 것, 비양심적인 것과는 추호도 타협하지 않았다. 상대가 너절한 인간이라는 것을 간파하게 되면 그 누구와도 단호히 결별하였다. 마동희동지는 조선인민혁명군 중에 “뛰어난 혁명전사”였고 “공산주의자의 표본”이었다고 김주석은 높이 평가했다.


마동희동지가 지녔던 강한 신념과 의지는 자기가 숭상하는 이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며 그 이념을 위해서라면 “굶어죽을 각오”, “얼어죽을 각오”, “맞아죽을 각오”까지 되어있는 그런 신념이었다. 즉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자기 계급, 자기 인민의 힘에 대한 확신이며 자체의 주체적인 힘으로 만난을 극복하면서 혁명을 끝까지 완수해나가려는 각오를 의미한다고 김주석은 보았다.


물론 혁명의 배신자들도 여러명 있었다. 경찰에 끌려가 곤장맛을 몇개 보자마자 곧 자기가 아는 밀영들과 지하조직들을 다 불었던 배신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맞아죽을 각오”가 없었다. 자기가 맞아죽더라도 혁명의 이익을 고수해야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했는데 배신자들은 반대로 혁명이야 어떻게 되든지간에 자기만 무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였다. 마동희동지는 혀를 끊으면서도 혁명가의 절개를 지켰는데 배신자들은 혁명 앞에 다진 맹세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배신의 길을 택하였다.


김주석은 <육체적 생명>외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생명이라고 할수 있는 <사회정치적 생명>에 대해 강조하였다. 사회정치적 생명의 나이는 “신념의 유무와 대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김주석은 보았다. 신념이 강하고 의지가 강할수록 그 인간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는 데서 “장수자”가 된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손에 무장을 들고 김주석과 함께 험난한 항일혁명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물론 신념도 강하고 의지도 강한 백절불굴의 투사들이었다고 김주석은 회고했다. 그들은 최악의 역경에 처한 순간에도 “혁명가의 지조”를 버리지 않았고 조국해방에 대한 신념을 더럽히지 않았다. 김주석과 끝까지 함께한 전우들과 전사들은 낯설은 이역에서 황야의 티끌로 사라지면서도 <미래를 사랑하라!>고 부탁하였으며 <공산주의는 청춘!>이라고 부르짖었다. 혁명가는 정의를 옹호하고 불의를 증오하며 진리만을 말해야 한다는것, 혁명하는 사람들이 동지들과 인민들에 대한 의리를 잘 지키자면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들 혁명가들이 지니고 있던 생활의 신조였다. 이처럼 강한 신념과 의지를 가진 강자들만이 최후를 멋지게 장식할 수 있었다. 이런 신념이 없었다면 항일유격대원들이 만주의 그 모진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김주석은 진단했다.


다음으로, 김주석은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서 생사결단의 각오를 가지고 <민생단>심판장에서 자기의 은사를 구원해낸 용감한 유경수동지를 회고하였다. 혁명가로서의 유경수동지의 인간미는 자기 사령관의 명령, 지시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행정신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는 사령관의 명령을 집행하는 데서 맹세나 약속을 번지르하게 하지 않았지만 일단 한 맹세나 약속은 어김없이 이행하는 좋은 품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김주석은 회고했다. “우리가 믿을 곳은 사령관동지의 품밖에 없다, 사령관동지를 잘 모시고 받들어야 우리는 조국의 해방도 이룩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의 운명도 개척할 수 있다, 사령관동지의 의도대로 하기만 하면 우리는 이긴다.” 이것이 바로 유경수동지가 일상적으로 간직하고 있던 신념이었다고 김주석은 회고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김주석의 명령이나 지시를 훌륭하게 집행할 수 있었다고 김주석은 평가했다.


유경수동지는 김주석이 어떤 일을 부탁하면 정해준 날자와 시간과 장소를 한치의 편차도 없이 엄수하였다고 한다. 유경수동지의 드팀없는 자세와 철저한 집행정신은 자기 사령관은 어떤 정황에서나 대원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확고부동한 신념과 사령관의 신임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나 고통도 각오해야 한다는 진정한 의리심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고 김주석은 보았다. 이런 신념과 의리심을 가지고 유경수동지는 해방후 철도경비대를 조직하고 탱크부대를 건설하였으며 전쟁의 매 단계에서 최고사령부의 작전적 방침을 실현하는데서도 큰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김주석은 인민무력부의 지도간부들을 만날 때마다 군인들을 그 어떤 정세변화나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신념과 의지를 굳건히 지킨 유경수동지같은 강의한 투사, 충신들로 키우라고 말하곤 했다.


역사적 경험은 혁명이 승승장구하고 정세가 유리할 때에는 대오 안에서 동요분자, 변절자들이 나오지 않지만 내외정세가 복잡하게 변하고 혁명의 길에 어려운 난관이 조성될 때에는 대열 안에서 사상적 혼란과 동요가 생기고 투항분자, 낙오분자들이 나와 혁명에 막대한 해독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김주석은 회고 했다. 그래서 김주석은 항상 “사상수양”을 강조하였다. 김주석이 염두에 둔 <사상수양>이란 주로 “신념교양”, “낙관주의교양”을 의미한다. 사람이 “사상단련”을 잘 하지 않으면 역경에 부닥쳤을 때 곤난 앞에서 곧 굴복하게 된다. 그래서 김주석은 늘 “사상제일론”을 주장하였다.


소련과 일본사이에 <중립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조선혁명대오에서 도주자가 생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일부 조선항일유격대원들 중에 소련에 대한 “의존심” 즉 “사대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일부 지휘관들이 “민족자주의식”을 배양하는 교양에는 힘을 덜 돌리고 소련옹호, 소련중시, 소련제일주의 사상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다보니 소련만 믿고 의존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말하자면 소련의 지지나 도움이 없이는 조선독립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때 김주석은 “민족자주의식”이야말로 혁명가의 신념을 좌우하는 하나의 결정적 요인으로 된다는 진리를 절감하였다고 고백하였다. 혁명을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자주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자주독립의 관점”을 확고히 가지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도주자나 변절자가 생기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이나 자기 나라 인민의 힘은 하찮은 것으로 보면서 큰 나라의 덕으로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보려고 시도했던 사대주의자들 가운데서는 낙오자들과 투항분자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김주석은 회고했다. 사람이 자기 인민의 힘을 믿지 않으면 어려운 환경에 부닥칠 때 대부분 패배주의에 빠지게 되며 패배주의에 빠지면 곧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잃고 투쟁을 포기하거나 중도반단하게 된다는 것이 김주석의 판단이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큰 나라들이 혁명에서 곡절을 겪을 때면 자기 나라 혁명도 다 망한 것처럼 생각한다. 혁명이 국제적 성격을 띠는 것만큼 “국제반제역량”과의 단결을 지향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다른 나라 공산주의자들의 실패에 동정을 표시하거나 그들의 슬픔을 자기의 슬픔으로 여기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또 큰 나라 혁명의 실패가 자기 나라 혁명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큰 나라 혁명이 일시적인 좌절을 당한다고 하여 작은 나라 혁명도 다 망하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기발을 내던진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라고 김주석은 생각했다.


혁명은 “국제적 성격”을 띠기 전에 우선 “민족적 성격”을 띤다고 김주석은 믿었다. 혁명이 <민족국가>단위로 진행되는 조건에서 매개 나라 공산주의자들이 자체의 힘으로 혁명을 완수하려는 확고한 결심과 신념을 가지고 자기 나라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완강하게 투쟁을 벌려나간다면 어떤 어려운 고지든지 능히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이 김주석의 시종일관한 주장이며 지론이었다.


김주석의 체험에 의하면 혁명을 쉽게 생각하고 무장대오에 들어왔던 사람들, 신념이 뚜렷하지 못하고 의지가 박약한 자들, 종파근성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남을 깔보거나 따돌리는 사람들, 패배주의자들은 예외없이 내외정세가 복잡하고 혁명 앞에 시련이 닥쳐올 때 배신의 길로 굴러떨어졌다고 한다.


혁명대오에서 배신자들이 나올 때마다 김주석은 전우들에게 다음과 같이 언급하곤 하였다.

“정세는 엄혹하고 투쟁은 점점 더 간고해진다. 우리 혁명위업이 열매를 맺어 나라가 반드시 독립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일치하게 믿고 있는 바이지만 그런 날이 언제쯤 오겠는가 하는 것은 누구도 모른다. 그런즉 우리를 끝까지 따라갈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마음놓고 집으로 돌아가라. 도주는 비열한 것이지만 보고하고 가는 것은 일없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10년이상이나 혁명을 같이 하다가 인사도 하지 않고 헤여지겠는가. 집으로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바래워주겠다. 그리고 투쟁을 중도반단한데 대하여 문제시하지 않겠다. 힘이 모자라고 신념이 약해서 대오를 떠나는거야 어떻게 하겠는가. 갈 사람은 가라.”


김주석은 이런 식으로 내놓고 말하면서 혁명승리에 대한 굳은 신심을 가지도록 대원들을 교양하 였다. 이 말을 들은 대원들 가운데는 전우들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조선의 참다운 공산주의자들은 아무리 정세가 복잡하고 난관이 심하여도 신심을 잃지 않고 완강하게 항쟁을 계속하였으며 마침내 일제의 폐망을 볼 수 있었다.


항일전쟁이 낳은 영웅들의 뒤를 이어 김정일시대에는 어려운 초소들에서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백절불굴의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이 끝없이 배출되었다. 김정일시대의 거창한 혁명투쟁과정은 곧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을 낳는 온상이며 터전이었다. 김정일위원장이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내세우고 높이 평가한 이인모동지를 비롯한 무수한 장기수들의 실례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당시 조선의 온 나라 당원들과 근로인민대중들은 신념과 의지의 화신인 장기수들을 따라배우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리었다.


지금 김정은시대는 전체 인민들의 신념과 의지를 가다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당과 군대, 인민대중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철석같은 신념을 가지고 제국주의연합세력의 집요한 봉쇄정책과 경제제재, 반동적인 사상공세로부터 조선의 신념과 제도를 고수하며 항일혁명투사들과 장기수들이 지녔던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조성된 난국을 뚫고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혁명선열들이 피로써 고수해온 신념을 버리고 그 신념의 창조물인 사회주의를 버린 것으로 하여 지금 여러 나라들에서는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온갖 사회악과 패륜패덕이 난무하고 있다. 역사는 신념과 의지를 버린자들에게서 응당한 대가를 받아내는 법이다. 조선이 그 어떤 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나라로 된 것은 조선노동당의 신념과 의지가 강하고 인민대중의 신념과 의지가 강한 덕이다. 신념과 의지가 강한 당은 변질되지 않고 신념과 의지가 강한 국가는 붕괴되지 않으며 신념과 의지가 강한 인민은 와해되지 않는다.


어려운 국제정세와 코로나 19로 인하여 조선은 앞으로 더 어려운 길을 걸어가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의 최고지도자와, 당, 군대, 인민대중은 그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신념과 의지의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조선의 최고지도자, 당, 군대 인민대중은 일심단결하여 변함없이 전진하여 마침내 정의의 강국, 신념과 의지의 강국, 선군강국, 사회주의문화강국을 반드시 세우고야 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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