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26 01:40
주체사상의 계승성과 독창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
 글쓴이 : 최고관리자
 
주체사상의 계승성과 독창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마르크스주의 대가라고 불리울만한 학자였던 박소심선생도 모르는 것이 있고 막히는 데가 있었다고 김주석은 회고록에서 지적하였다. 김주석은 박소심선생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들에서는 노동계급의 <계급적 해방>이 선차이고 <민족적 해방>이 후차라고 했는데 우리 나라는 우선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야 노동자, 농민이 계급적으로도 해방될 수 있지 않겠는가고 물은 적이 있었다. 박소심선생은 김주석의 질문에 당황하여 어정쩡한 대답을 하였다. 김주석은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종주국에서의 혁명과 식민지나라들에서의 혁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면서 종주국에서의 혁명승리가 가지는 의의만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나라 경우에는 종주국 일본의 노동계급이 혁명에서 승리해야 우리 나라가 독립될 수 있단 말이 아닌가, 우리는 그들이 승리할 때까지 가만히 앉아있어야 한단 말인가고 다시 물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대가인 박소심선생도 그 질문에는 대답이 막히었다. 그는 놀란 눈으로 한참 김주석을 바라보았다. 박소심선생은 고전에 기록된대로 노동계급의 <계급적 해방>을 <민족적 해방>에 앞세우고 종주국 노동계급의 투쟁을 식민지나라에서의 민족해방투쟁보다 중시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노선상의 문제라고 도식적으로 설명하였다. 김주석이 이해가 잘 안되어 머리를 기웃거리자 그 자신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학술상으로만 연구해왔을 뿐이지 조선의 독립과 조선에서의 공산주의건설이라는 구체적인 혁명실천과 결부시켜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이처럼 마르크스-레닌주의도 문자그대로 혁명실천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김주석은 깨달았다. 맑스-레닌주의 고전들에는 노동계급의 계급적 해방과 민족해방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론적 해명이 부족하였다


위의 회고록에서 보았듯이 선행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문자그대로 믿고 아무 곳에나 교조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 그 <제한성>을 잘 이해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주체사상의 <독창성>과 <우월성>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독점전 자본주의시기와 제국주의시기 노동계급의 혁명실천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혁명사상이다. 그때로부터 역사는 멀리 전진하였고 시대는 많이 달라졌다. 오늘 우리 시대는 김정일 위원장이1992년 11월 14일 발표한 논문 [사회주의는 우리 인민의 생명이다]에서 잘 지적했듯이 “인민대중이 역사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역사를 개척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자주의 새시대”이다. 마르크스주의 창시자들은 “사회주의건설을 해보지 못하였으며 레닌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김정일위원장은 위 논문에서 지적하였다. 시대적 조건과 실천적 경험의 제한성으로 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 창시자들이 내놓은 사회주의 이론은 대부분의 경우 “예측과 가정”의 범위에 머물렀다.



물론,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창시됨으로써 사회주의 학설이 <공상>으로부터 <과학>으로 전환되고 노동계급이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의 <지도사상>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본을 반대하고 계급해방과 민족해방,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올 수 있었다. 또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그 당시 유럽을 지배해왔던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관념론>을 극복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제한성>을 올바로 이해하자면 조선노동당의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의 <독창성>과 <우월성>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석이 역사의 새시대, <자주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창시한 <독창적인 사상>이다. 주체사상의 독창성과 우월성을 잘 밝히면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제한성은 자연히 밝혀지게 된다.


김정일위원장은 1996년 7월26일 [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김정일위원장은 이 논문에서 주체철학이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는 일부 사회과학자들이 아직도 주체철학의 기본원리들을 해설하는 데서 <사회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해명하는 데로 지향시키지 못하고 그것을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의 견지에서 해석하려고 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면 위 논문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자세히 지적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제한성>과 주체사상의 <독창성>과 <우월성>은 무엇이며 주체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계승한 점은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첫째로, 김정일위원장은 이 논문에서 철학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자세>와 <입장>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먼저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모든 철학적 문제는 반드시 <혁명실천의 요구>로부터 출발하여 탐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은 실천에 기초하고 실천에 복무하여야 한다. 박소심선생의 경우처럼 실천을 떠난 이론은 진리를 올바로 밝힐 수 없으며 아무런 의의도 없다는 것이다. 김일성주석은 철학적 문제를 탐구하는 데서도 언제나 <혁명실천의 요구>로부터 출발하였으며 혁명실천에서 제기되는 절박한 사상이론적 문제들에 과학적 해답을 주는 과정에 <주체철학>을 창시하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풍부하고 심오한 혁명실천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주체철학을 전면적으로 체계화 하고 심화발전시켰다. 혁명실천은 인민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며 이 투쟁의 담당자는 인민이기에 철학적 탐구에서도 중요한 것은 인민의 <요구와 지향>을 올바로 반영하고 인민의 <투쟁경험>을 일반화하여 이론을 전개하고 그것을 인민 자신의 것으로 만들도록 해야 한다. 착취사회에서 지배계급은 철학을 통치제도를 옹호하고 합리화 하는 데 이용하면서 그것을 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철학가들의 독점물로 만들려고 하며 인민은 철학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고 철학을 이해할 수도 없는 몽매무지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


김정일위원장은 “인민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가장 지혜로운 존재”라는 관점과 입장으로부터 출발하여 인민의 요구와 지향을 반영하고 인민의 투쟁경험을 일반화하여 주체철학을 정립하고 심화발전시켰으며 그것을 민중자신의 투쟁의 무기로 전환시켰다. 주체철학이 인민의 자주적 요구와 지향에 부합되는 참된 진리로 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인민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히는 데 별로 실천적 의의가 없는 문제를 가지고 탁상공론만 일삼고 있다고 김위원장은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우리가 철학을 연구하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어떤 원리와 방법론에 기초하여 사회를 발전시키고 인민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겠는가 하는 것을 밝히자는 데 있다는 것이 김위원장의 견해였다.


또한, 사회과학자들과 인민들이 선행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사상 뿐 아니라 여러 철학사상들도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고 김위원장은 강조하였다. 선행철학에 대한 연구에서는 <진보적이며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제한성>과 <미숙성>을 똑똑히 가려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행철학이 이룩한 역사적 공적 뿐 아니라 그 시대적 제한성과 사상이론적 미숙성을 똑똑히 알아야 선행이론을 <교조적으로 대하는 편향>을 막을 수 있고 주체철학의 <독창성>과 <우월성>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주체철학을 연구체득한 기초위에서 그 원리에 비추어 선행철학의 <공적>과 함께 그 <제한성>과 <미숙성>을 똑똑히 파악하는 데 깊은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김위원장은 역설했다.


둘째로, 김정일위원장은 이 논문에서 주체철학이 <사람 중심의 독창적인 철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주체철학은 자기의 고유한 원리들로 전개되고 체계화된 독창적인 철학으로 주체철학이 철학사상의 발전에서 이룩한 역사적 공적은 <사람 중심>의 새로운 철학적 원리들을 밝힌 데 있다는 것이다.


종래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물질>과 <의식>, <존재>와 <사유>의 관계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물질의 일차성>, <존재의 일차성>을 논증한 데 기초하여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물질의 운동에 의하여 변화발전한다는 것을 밝혀주었다면 주체철학은 <세계>와 <사람>과의 관계문제,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새롭게 제기하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를 천명한데 기초하여 사람의 운명개척의 가장 정확한 길을 밝혀주었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이 물질세계의 본질과 그 운동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밝히는 것을 중요한 철학적 과제로 내세웠다면 주체철학은 <사람의 본질적 특성>과 사람의 운동인 <사회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밝히는 것을 중요한 철학적 과제로 내세웠다. 이처럼 주체철학은 그 철학적 과제와 원리들이 선행철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독창적인 철학이다. 주체철학은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과학적으로 해명한데 기초하여 사람을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고 힘있는 존재로 내세우고 세계는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된다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내놓았다.


세째로, 김정일위원장은 이 논문에서 주체철학은 <유물변증법적 세계관>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주체철학이 새로운 세계관을 밝혔다고 하여 <유물변증법적 세계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가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된다는 세계에 대한 주체적인 견해는 객관적인 물질세계의 본질과 그 운동의 일반적 합법칙성에 대한 유물변증법적 이해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기독교를 비롯한 관념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를 신비로운 존재로 본다면 사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없으며 <형이상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를 고정불변한 존재로 본다면 사람이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없다. 세계가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된다는 세계에 대한 주체적 견해는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끊임없이 변화발전한다는 세계에 대한 <유물변증법적인 이해>를 시인하는 조건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유물변증법이 일부의 제한성과 미숙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기본원리들은 과학이며 진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위원장은 주체철학이 <유물변증법적 세계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체철학이 유물변증법적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주체철학이 단순히 유물변증법을 계승발전시킨 철학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물질세계에 대한 유물변증법적 이해를 떠나서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개조할 수 없지만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유물론>과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발전한다는 <변증법>의 원리만으로는 사람이 세계에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세계를 개조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다른 모든 물질적 존재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 해명된 조건에서만 세계의 주인, 세계의 개조자로서의 사람의 특출한 지위와 역할이 올바로 밝혀질 수 있다. 주체철학에 의하여 비로소 <사람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 과학적으로 해명됨으로써 사람은 세계에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세계를 개조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근본원리가 밝혀지게 되었다.


네째로, 김정일위원장은 이 논문에서 <사회적 존재>로서 사람이 어떻게 되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아직도 사람의 본질적 특성문제를 <물질적 존재로서의 발전수준 문제>로 보면서 사람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게 된 출발점을 물질의 구성요소의 다양성과 그 결합구조의 복잡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자연적, 생물학적 속성>의 연장으로, 그 발전완성으로 보는 견해이다. 생명유기체로서의 사람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사람과 다른 생명물질을 대비하여 고찰할 수 있고 사람의 생물학적 구성요소와 결합구조의 특성에 대하여 논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주체철학에서 논의하는 사람은 고도로 발전된 유기체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어떤 다른 생명물질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고 살며 활동하는 존재이다. 사람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게 된 출발점은 다른 물질적 존재와의 공통성의 발전에서가 아니라 그 어떤 물질적 존재도 가질 수 없는 특성에서 찾아야 한다.


사람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사람이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람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사회역사적 과정에 형성되고 발전되는 <사회적 속성>이다. 물론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람의 고도로 발전된 <유기체>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사람이 고도로 발전된 유기체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사람은 진화의 최고 산물이며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유기체가 아무리 발전되었다 하더라도 사람이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지 않았더라면 사람은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존재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육체적 생명>이 없으면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닐수 없지만 <육체적 생명> 그 자체가 <사회정치적 생명>을 낳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발전된 유기체를 떠나서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지만 사람의 <생물학적 특성> 그 자체가 사람의 <사회적 속성>을 낳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사회적 속성>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발생과 발전과정, 다시 말하여 사람의 사회적 활동과 사회적 관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통하여서만 형성 발전될 수 있다. 사회의 발전역사가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역사라고 하는 것은 곧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발전되는 <사회적 속성>이라는 것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다섯 째로, 김정일위원장은 이 논문에서 주체철학에서 쓰고 있는 <사회적 존재>에 대한 의미와 마르크스주의철학에서 쓰고 있는 <사회적 존제>에 대한 의미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해설해 주고 있다. 사람에 대한 철학적 고찰에서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데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그런데 일부 사회과학자들이 물질의 구성요소와 그 결합구조에 대한 논의를 들고 나와 사람의 본질적 특성과 연관시키며 마치도 그것이 주체철학의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주체철학을 마르크스주의 유물변증법의 틀에 맞추어 해석하는 편향의 표현이며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생물학적 속성의 발전완성으로 이해하는 그릇된 <진화론적 고찰방법>을 정당화 하려는 것으로 밖에 되지 않는다고 김위원장은 주장하였다. 사람의 본질적 특성과 관련하여 <사회적 존재>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마르크스주의 창시자들은 사람의 본질문제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제기하면서도 <사회적 존재>라는 말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사회적 의식에 반영되는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과 <경제적 관계>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썼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창시자들이 사람을 <생산력의 구성요소>로, <사회관계의 총체>로 보았기에 그들이 말한 사회적 존재에는 사람도 포함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창시자들은 <사회적 존재>라는 말을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규정하는 고유한 의미로는 쓰지 않았다.


주체철학에서는 <사회적 존재>라는 말 자체를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규정하는 고유한 의미로 썼다. 주체철학의 원리에서는 세계에서 사회적 존재는 오직 사람 뿐이다. 그런데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의연히 사회적 존재에 <사회적 재부>와 <사회적 관계>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사람과 사회적 재부, 사회적 관계의 차이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사회적 재부와 사회적 관계는 사람에 의하여 창조되고 발전되며 따라서 그것을 사람의 고유한 특성을 규정하는 개념에 같이 포함시킬 수는 없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철학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사회적 존재>라는 말을 그 창시자들이 쓰던 의미로 쓸 수 있다. 그러나 주체철학에 대하여 말하면서 사회적 존재라는 말을 기성의 뜻대로 이해하면 결국 사람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모호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주체철학은 자기의 고유한 체계와 내용을 가진 새로운 철학이기에 그 범주도 기성의 의미에 맞추어 이해하려고 하여서는 안된다.


여섯 째로, 김정일위원장은 이 논문에서 <주체사관>과 <유물사관>의 차이점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주체철학은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에서 출발하여 <주체의 사회역사관>, <주체사관>을 확립함으로써 선행 사회역사관의 제한성을 극복하고 사회역사에 대한 견해와 관점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사회역사에 적용하여 <유물변증법적 사회역사관>, <유물사관>을 확립하였다. 물론 유물사관의 역사적 공적을 부인하면 안된다. 기독교의 구속사관같은 관념론과 형이상학에 기초한 비과학적인 사회역사관을 타파하는 데서 <유물사관>은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또한, 사람이 객관적인 물질세계에서 살며 사회가 자연과 불가분리적으로 연관되어 있기에 사회현상에도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법칙이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 운동에는 그에 고유한 합법칙성이 작용한다는 것을 보지 않고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사회현상에 그대로 적용하면 사회역사에 대한 일면적인 이해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운동은 자기의 고유한 합법칙성에 따라 변화발전한다. 사회적 운동은 세계를 지배하며 개조해 나가는 <사람의 운동>이다.


사람은 객관적 물질세계에 대한 지배와 개조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연개조 활동>을 벌린다. 사람은 자연을 개조하여 물질적 부를 창조하고 자기의 물질적 생활조건을 마련한다. 자연을 개조하여 물질적 부를 창조하는 사업은 사람들의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사업이며 그것은 사람들의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협력관계를 개선하며 완성하기 위하여 <사회개조 활동>을 벌린다. 자연을 개조하는 것도 사람이며 사회를 개조하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활동을 벌리면서 자기 자신도 끊임없이 개조하며 발전시켜 나간다.


사람에 의한 세계의 지배와 개조는 결국 <자연개조>, <사회개조>, <인간개조> 사업을 통하여 실현되며 그 주체는 인민이다. 인민에 의하여 사회의 모든 물질문화적 재부가 창조되고 사회관계가 발전한다. <사회적 운동>은 인민을 주체로 하는 운동으로서 <자연의 운동>과는 다른 자기의 특성을 가진다. <자연의 운동>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들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 지지만 <사회적 운동>은 주체인 인민의 <주동적 작용과 역할>에 의하여 발생발전한다. 그러므로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밝힌 유물변증법의 원리들을 사회역사에 그대로 적용하여서는 사회의 본질도 사회적 운동의 합법칙성도 정확히 해명할 수 없다. 유물사관의 주되는 제한성은 <사회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옳게 밝히지 못하고 <자연의 운동>과 <사회적 운동>이 다 <물질적 운동>이라는 공통성을 기본으로 하여 사회적 운동원리들을 전개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은 사회를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으로 구분하고 그 상호관계에서 사회적 존재에 규정적 의의를 부여하였으며 사회구조도 <생산력>과 <생산관계>, <토대>와 <상부구조>로 가르고 물질적 생산과 경제적 관계에 결정적 의의를 부여하였다. 이것은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질운동의 일반적인 법칙에 따라 변화발전한다는 유물변증법의 원리를 사회역사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창시자들이 물질세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사회역사에 적용하면서 고찰한 세계는 자연 뿐 아니라 사람도 사회도 물질적 존재라는 점에서 통일되어 있는 세계다. 사람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보지 않고 <물질로 통일되어 있는 세계의 한 부분>으로 보고 <물질세계의 일반적 운동법칙>을 사회역사에 그대로 적용하면 <사회역사적 운동>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사회도 사람의 <자의적인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정한 법칙에 따라 변화발전한다. 그러나 사회에서의 법칙의 작용은 자연에서의 법칙의 작용과 본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자연에서는 법칙이 사람의 활동과는 관계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작용하지만 사회에서는 법칙이 사람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활동>을 통하여 작용한다. 사회법칙에는 사회제도에 관계없이 모든 사회에 일반적으로 작용하는 법칙도 있고 일정한 사회제도에서만 작용하는 법칙도 있다. 모든 사회법칙은 <사람의 활동>을 통하여 작용하기에 사람이 어떻게 활동하는 가에 따라 법칙이 순조롭게 작용할 수도 있고 그 작용이 억제되거나 제한될 수도 있다.


사회법칙이 사람의 활동을 통하여 작용한다고 하여 사회법칙은 <객관적 성격>을 띠지 않는다거나 사회적 운동에는 <자연발생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정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형성되면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한 사회법칙이 작용하며 따라서 그것은 자연법칙과 같이 객관적 성격을 띤다. 사회적 운동에 자연발생성이 작용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 못하고 또 그것을 충분히 발양시킬 수 있는 사회제도가 세워지지 못한 것과 관련된다.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높아지고 그것을 충분히 발양시킬 수 있는 사회제도가 세워지면 사람은 더욱 더 객관적인 법칙의 요구에 맞게 활동하게 되며 자연발생성의 작용범위도 더욱 더 좁아지게 된다. 사회의 발전은 인민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과정이며 인민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높아지고 그 요구에 맞게 사회제도가 완성되면 사회는 더욱 더 인민의 목적의식적인 활동에 따라 발전하게 된다. 이것은 주체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에 의하여 변화발전하는 사회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이 전면적으로 관철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주의 창시자들이 물질세계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사회역사에 적용하여 <유물변증법적 사회역사관>을 확립하였지만 그들도 현실적으로 사회적 운동에서 물질세계의 일반적 합법칙성만으로는 풀 수 없는 많은 문제들에 부닥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회적 의식>은 <물질경제적 조건>을 반영하여 발생하지만 물질경제적 조건에 반작용을 하며 정치도 경제에 의하여 규정되지만 경제에 반작용을 한다는 이론을 비롯한 일련의 이론들을 제시하여 유물변증법적 사회역사관의 일면성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운동과 사회적 운동의 공통성>을 기본으로 보는 사회역사관이며 그 이론으로써는 사회의 발전과정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제한성을 면할 수 없었다.


주체철학과 선행철학의 근본적 차이는 결국 <사람>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사람의 본질을 <사회관계의 총체>로 규정하면서도 사회적 존재로서 사람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올바로 밝히지 못하였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사회적 운동원리를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기본으로 하여 전개한 것은 바로 사회적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해명하지 못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일곱 째로, 김정일위원장은 위에서 지적한 인간의 본질적 특성과 인간중심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명확한 분석에 기초하여 주체철학은 <정치철학>이라고 이 논문에서 밝히고 있다. 사회의 발전은 <정치>에 의하여 향도되며 사회발전을 가장 곧바른 길로 인도하는 정치의 원리적 기초를 밝혀주는 철학이 바로 주체철학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철학은 <정치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체철학은 조선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의 철학적 기초와 변혁의 근본원리를 밝혀주는 <혁명철학>이며 <정치철학>이다. 우리는 주체철학의 원리를 깊이 체득하여 그것을 변혁과 건설을 위한 실천활동에 철저히 구현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앞에서 이미 강조했듯이 주체철학은 <혁명실천의 요구>를 반영하고 <혁명실천>에 의하여 그 진리성과 정당성이 확증된 가장 우월하고 생활력 있는 철학이다. 오늘 국제무대에서 주체철학에 대한 관심이 더욱 더 높아지고 주체사상 신봉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사실은 주체철학이 혁명실천에 가장 올바른 해답을 주는 철학이라는 것을 뚜렷이 실증하여 준다. 사회과학자들은 주체철학의 <과학성>과 <진리성>, <독창성>과 <우월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주체철학을 지침으로 하여 모든 철학이론들을 분석 판단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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